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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여행의 묘미 이스라엘에서 가장 상업화되고 가장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도시 텔아비브. 지금와 와서 생각해보면 텔아비브는 나에게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인지 가장 상세하고 명확하게 알려준 도시가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첫날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나는 숙소가 있는 텔아비브로 향했고, 다음날이 숙소 체크인이라 그날 새박 어둠에 휩싸인 텔아비브에서 차를 몰고 다녀야했녔다. 나는 갈 곳이 없었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도시를 돌아다니며 주차하고 잘 곳을 찾는 가진 것 없는 여행자였다. 결국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는데 그곳이 하필 텔아비브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그곳은 당혹스러움마저 완벽했다. 2000년 전 베드로는 지중해 해안 도시 욥바에 머문 적이 있다. 그는 시몬 피장의 집에 있었다. 그곳에서 광.. 2018. 8. 27.
유럽 아무도 모를 장소에 서다 아..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 과거 20대를 떠올려본다. 나는 거침없는 글을 자주 썼다. 그럴 때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거침이 없었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희망이 많았다. 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글쓰기라는 행위를 할 때 나는 자주 멈추고 생각하고 지우고 덮어버리는 게 됐다. 직업이 글쓰는 일이면서도 이렇다. 글 쓰기를 무서워한다. 누군가 그랬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 이런 걸 생각하면 취미를, 혹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여행이다. 이번 네덜란드는 지난 2월에 갔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겨울에 나는 과연 네덜란드에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바빴다. 실험실 숙소 실험실 .. 2018. 8. 25.
암스테르담 노천시장 여행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일대와 삼청동, 서촌, 종로, 명동 등 서울의 사대면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걸어서 다니기 굉장히 편한 도시고 점 멀다 싶으면 트램 Tram 이라고 불리는 지상 철도를 이용하면 좋다. 택시는 비싸다고 해서 나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트램만 타도 암스테르담 여행은 쉽게 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을 보고 느낀 감정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침이 평화로운 도시." 오후 되면 좀 복잡해지다보니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하길 권한다. 암스테르담은 바다 근처에 형성된 도시다. 네덜란드 땅이 해수면보다 낮기 때문에 운하가 많은데 암스테르담엔 특히 운하가 많았다. 나중에 꼭 이 운하를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을 타고 암스테르담을 구.. 2018. 8. 17.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후기 한 9년 만일 것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다시 봐야겠다 여러번 생각한 끝에 9년이 지나버렸다.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미룬 만큼 세월도 흘렀고, 나도 많은 일을 겪었으니 보고자한 영화에서 오는 기분은 또 다르겠지. 그때 나는 24살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알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인생이란 생각만큼 쉽지 않겠구나 혹은 그 인생이란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줄 아름다운 회전목마는 결코 아니겠구나를 생각했던 것 같다. 여하튼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 인생이란 것도 처음부터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니 날 때부터 꼬여먹은 것이었다. 그러니 태어난 아기는 첫 만남부터 그렇게 울부짖는 것이겠지. 안 되는 것을,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고집스럽게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 좋다.. 2018. 8. 12.
네덜란드 유태인 시나고그 방문기 네덜란드는 한 때 유럽에서 가장 부강하고 부유한 국가였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 그것이 가능했을까.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유대인'들이 네덜란드에, 특히 수도 암스테르담에 많이 거주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네덜란드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암스테르담 내에 위치한 유태인 시나고그 방문이다. 지금은 박물관이 돼 있지만 과거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으로 쓰였던 역사 깊은 장소다. 사실 동인도회사를 주축으로 한 네덜란드의 전성기는 유태인들이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체류했던 기간과 절묘하게 일치한다고 한다. 유대인이 이동하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돈이 이동했다. 그들은 민족적 특성에 따라 유럽에서 외인이었지만 그런만큼 그들이 소유하는 부도 어느 나라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 2018. 8. 5.
이스라엘 야드바솀 방문기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는 야드바솀 Yad VaShem 이라고 불리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과 쌍벽을 이루는 이스라엘 최대의 박물관이라고 보면 좋다. 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박물관이다. 이스라엘 박물관이 고대 전통 이스라엘을 소개하는 곳이라면 야드바솀은 홀로코스트를 있는 보여주는 장소이다. 개인적으로 이 야드바솀을 방문했던 기억이 더욱 선명하다. 많은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몇 장의 사진은 남겼다. 돌아오고 나서 더 많이 찍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스라엘 야드바솀에 들어오면 처음에 보이는 곳이 직삼각형 구조형 건물이 나온다. 그 처음 벽면에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유대인 사진들이 나온다. 이때부터 이곳을 방문하는 유대인들과 관광객들은 숙연해지고 무엇이든 자제할 준비가 된 사람들의 .. 2018. 7. 4.
유럽여행 중 안네 프랑크 집 방문기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방문했다.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다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이 곳 만큼은 한번 쯤 들려도 될만하다고 추천한다. 분명 후회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유럽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은 기점으로 유대인의 역사가 되었다. 누군가 유대인을 향해 아무 생각없이 비아냥거릴 때 나는 그들을 향해 가끔은 격양된 감정으로 답변한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그들을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인류는 한 때 논리정연함과 법적투철함으로 '유대인을 죽였다.' 그 살인 안에는 훌륭한 철학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양심을 멈추게 했다. 양심의 소리가 멈춘 시간에 유대인 시체를 태운 재들이 평온한 가정 앞뜰에 소복히 쌓여갔다.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것이 유럽의 역.. 2018. 7. 3.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방문기 네덜란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미술관, 박물관 관람이다. 네달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천재 화가 '반 고흐 미술관'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선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 일로 더 유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 정신병원과 굳이 연결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누구보다 자신의 작품 세계가 확실했으며,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다.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하고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은 네덜란드 사람들도 너무나 사랑하는 장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곳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이곳은 아이들의 교육 장소.. 2018. 7. 2.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박물관 방문기 렘브란트를 주로 '빛의 화가' '자화상의 화가'라고 부른다. 그만큼 빛을 이용한 표현 기법이 탁월하고, 이 기법을 사용해 자신의 얼굴을 유독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교과서적으로 그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 The Rembrandt House Museum 에 갔다. 그곳에 전시된 그의 역작들을 보며 렘브란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표현할 줄 아는 천재 화가 이전에,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특이한 화가 이전에, 언제나 작고 소박한 일상을 놓치지 않고 일기 쓰듯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였다. 그의 천재성도 거기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자화상은 그 작업의 일부였다. 그는 '일상의 화가'였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 2018. 6. 27.
유대인에 관하여 유대인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한국 언론 대다수는 유대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댓글을 보면 대다수 한국인이 마치 유대인을 혐오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댓글만으로 여론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침묵하는 다수가 오히려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댓글의 형식 만으로 한국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댓글을 유발하는 기사들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걸 보면 국내 언론의 시각이 유대인에 곱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유대인을 향해 살인자라고. 인권 탄압자라고. 그렇게 비판하고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알고 있는 유대인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 그 험난한 역사를 알면 현실의 복잡.. 2018. 6. 5.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을 보고서 네덜란드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아무래도 습지가 많았고 이에 일반신발을 신고 작업할 때마다 진흙에 빠지는 어려움을 겼었다고 한다. 이에 만들어진 것이 나무로 만든 신발. 아래 영상은 네덜란드 풍차 마을 잔센스칸스에서 찍은 나막신 만드는 영상이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자신들의 전통 나막신에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막신 만드는 과정을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저 아저씨. 네덜란드의 전통을 유지하는 장인일 것. 그럼에도 일반 네덜란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시 말해 장인의 모습보단 일반인 중 하나로 보였고, 그만큼 일반 시민들과도 가깝게 느껴졌다. '장인' 하면 사실 일반인과 거리가 멀지 않은가. 장인의 .. 2018. 6. 4.
예루살렘 여행 그리고 생각 "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색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소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는 예루살렘을 음울하고 침울한 분위기로 자주 표현했다. 그에게 히브리어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였다.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불안한 미래. 유대인은 언제 어디서나 이방인이었고 고국 땅에서조차 그들에게 외쳐진 목소리는 '민족 말살'이었다. 민족 말살. 유대인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겠다는 그 협박과 경고의 목소리. 유대인은 조용히 다시 당할 수만은 없었다.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끝날 길 없어보이는 갈등은 역사는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기 그지 없다. 예루살렘 하면 .. 2018.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