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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유럽여행 중 안네 프랑크 집 방문기

by 하 루 살 이 201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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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방문했다.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다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이 곳 만큼은 한번 쯤 들려도 될만하다고 추천한다. 분명 후회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유럽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은 기점으로 유대인의 역사가 되었다. 누군가 유대인을 향해 아무 생각없이 비아냥거릴 때 나는 그들을 향해 가끔은 격양된 감정으로 답변한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그들을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인류는 한 때 논리정연함과 법적투철함으로 '유대인을 죽였다.' 

그 살인 안에는 훌륭한 철학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양심을 멈추게 했다. 양심의 소리가 멈춘 시간에 유대인 시체를 태운 재들이 평온한 가정 앞뜰에 소복히 쌓여갔다.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것이 유럽의 역사다. 





"언젠가 이 끔찍한 전쟁이 멈추겠지. 

그 때가 오면 

우리는 다시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을 거야. 

유대인이 아닌 사람으로."


1944. 4. 11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다.  


나는 유럽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이곳으로 정했다. 고민이 되긴 했다. 조금만 더 가면 근처에 다른 좋은 장소도 많았다. 아직 암스테르담 운하를 오가는 유람선도 타지 못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아니다, 안네 프랑크의 집을 가는 것이 훨씬 더 마지막 유럽에서의 시간을 잘 썼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내가 평소 관심을 두고 있는 유대인의 희생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향했다. 



안네 프랑크가 숨어 있었던 공간은 위의 과거 사진에서 옅은 파란색 집이다. 


그 중 숨어있는 공간은 파란색 집의 뒤쪽 삼각형 지붕이 있는 건물이다. 앞쪽은 상점에 쓰는 물건들을 놓는 공간으로 위장했고 뒤쪽으로 이어지는 문은 서재로 위장했다. 



지금은 그 집 문 앞으로 안네 프랑크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수많은 관광객과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한가지 팁. 이곳은 무조건 '온라인 예약'을 해야한다. 나같은 경우,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 결국 그 자리에서 30분 뒤에 있는 티켓을 구매해 들어갔다. 티켓을 구매하고 자신이 입력한 메일에 표를 보여주고 입장하면 된다. 





치워진 물건들, 사라진 사람들..


그들은 죽었고, 역사는 바뀌었다. 은신처는 박물관이 되었다.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민족 부흥이라는 구호 아래 살인이 저질러졌다. 독인인들은 당시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아래 살인을 묵인했다. 외면했다. 이 살인은 나치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독일 전체의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인류의 문제가 되었다. 인류는 한 민족을 이 땅에서 제거하려 했다.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이다. 

최근 일어난 비극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계단을 소리내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오르고 내려갔을 안네 프랑크. 

은신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이 안네의 가족들과 암호를 주고 받으며 열었을 서재.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한다.

이곳에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은 침묵 가운데 계단이 내는 삐그덕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안네의 가족들이 숨었던 공간으로 이어지는 작은 통로. 

이곳엔 서재가 가로막고 있었다. 서재를 조심스럽게 열면 그 뒤로 안네 프랑크 가족들의 은신처로 연결됐다. 



유럽인들은 그들은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두려고 한다. 유럽 여행이 매력적인 건 여기서 나온다. 

혹 변형이 오거나 파손이 오면 사진을 통해서든 증언을 통해서 그 현장을 되살려 놓는다. 이를 보고 후손이 역사를 배우길 바란다. 교과서의 한계를 극복한다. 아이들이 보고 느끼게 한다. 다신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의 양심에 기록한다. 




"나는 언젠가 내 목소리를 낼거야. 세상을 향해 나가 인류를 위해 일할거야."





가장 가까이에서 찍은 안네 프랑크가 머문 집의 바깥 모습. 아래 보이는 창문이 안네의 침대가 있었던 곳이고 위의 창문은 다락방 창문이다. 안네는 매일 이 다락방으로 올라가 신선한 공기와 밝은 햇살을 맡았다.


그리고 희망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독일군이 1944년 9월 작성한 유대인 이송 리스트.


살인장부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 곳곳에는 증언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안네가 직접 쓴 글체를 신중하게 바라보았다.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안네를 상상한다. 지금도 나는 저 글씨 앞에서 떨린다. 쓰기를 고민한다.


안네 프랑크의 꿈은 작가였다. 자신이 쓴 소설들이 출간되기를 바랐다.. 그 사라진 소망. 어느날 밤 중 자던 안네 프랑크는 그 소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사진 왼쪽에 있는 노트는 안네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발췌한 글들이 담겼다. 그녀의 아버지는 안네에게 이런 방법으로 문장력을 가르쳤다. 안네는 이 공책을 '아름다운 문장들의 책 Book of beautiful sentences'라고 이름 지었다. 



실제 안네 프랑크의 모습. 


누가 찍었을까. 언제였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겠지. 


안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나치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족을 따라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1942년부터 1944년 8월 4일 2여년 동안 숨어있었다. 나치 경찰에 발각돼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했다.


 


짧고도 길었던 네덜란드 여행을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마지막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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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행 관련 포스팅(클릭 후 이동)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을 보고서

네덜란드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영상] 네덜란드 전통 풍차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고

유대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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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다른 곳에도 홀로코스트를 기념하는 곳이 많은 줄 안다. 기회가 된다면 그곳들을 둘러보고 싶다. 유대 역사에 대해, 유럽 역사에 대해, 인류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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