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색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소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는 예루살렘을 음울하고 침울한 분위기로 자주 표현했다. 그에게 히브리어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였다.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불안한 미래.
유대인은 언제 어디서나 이방인이었고 고국 땅에서조차 그들에게 외쳐진 목소리는 '민족 말살'이었다. 민족 말살. 유대인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겠다는 그 협박과 경고의 목소리. 유대인은 조용히 다시 당할 수만은 없었다.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끝날 길 없어보이는 갈등은 역사는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기 그지 없다.
예루살렘 하면 떠오른 시가 있다. 바이런의 시다. 바벨론 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이 바벨론 강가에서 불렀다는 내용을 담은 시.
기원전 바벨론 제국 시절 포로잡혀간 유대인들이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다"라는 내용.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 예루살렘이 살육당하던 그 날을 기억하는 유대인은 지금까지 살아서 후손들의 정신을 사로잡고 이 노랠 부르게 한다.
내가 본 예루살렘은 복잡다잡한 도시였다. 도로도 미로처럼 복잡했고 좁았으며 곳곳에서 분노에 찬 아랍인들이 내가 헤매는 걸 발견하고선 뒤따라와 경적음을 마구 내지르기도 했다. 분노를 표출할 어린양을 찾은 것이라도 된 마냥.
도시 일부 구역은 검은색 옷과 모자를 쓴 유대인들만 사는 동네였다. 듣기로는 그들은 율법주의자였다. 철저히 율법대로만 살고자 현실에서 멀어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고 들었다.
그들의 동네에 들어서면 외부자로서 내 모습이 눈에 확 띌 것만 같았다. 누구라도 나의 존재를 경계할 것만 같았고 혹은 위협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차에서만 찍어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해리라. 그들과 한번 대화조차 시도한 적 없는 내가 무엇을 안다고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고, 그들의 도시에 대해 더욱 알고 싶었다. 유대 민족처럼 철저하게 이 지구상에서 더럽고 추악하며 증오의 대상이 된 민족은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지구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언제나 이질적인 존재이었으며 인류의 적이기도 했다.
유대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해 인격은 쉽게 지워지고 무시당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을 걸으면서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 장벽을 느꼈다.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분리 장벽 말이다.
마치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차가운 유리에 손을 대고 있는 기분.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수 없는 상태. 서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가까이에 있지만 결코 소통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유대인은 나에겐 신비로운 민족이었다.
나는 예루살렘을 되도록이면 나의 시각에서 사진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아하거나 거룩하고 성스러운 이미지는 나에게 필요치 않았다. 인간 그 자체만으로, 유대인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히 가치 있었다. 인간만이 위대해 보였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신의 역사이며 인간의 역사이다. 마치 크고 강하지만 내성적인 인간의 심리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고 그 역사이다. 그 안에 심연의 고통이 서려있다.
나는 그것을 찾고자 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고, 낮은 흐느낌 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버려진 곳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나는 사진기를 그곳에 들이댔다.
그 사람의 위치에 서본 적이 없다면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고작 짧은 7일의 이스라엘 여행을 통해 마주친 유대인에게서 무엇을 알았다거나 느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예루살렘의 유대인과 아랍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마주치면서 이 이질적인 문명들이 한 때는 적대시했고 지금은 평화로우며 언젠가 불안해질 것만 같았다. 무엇이 예루살렘을 그토록 위태롭게 만들었는가. 쉽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
낡은 이스라엘 국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곤 했던 여행. 다윗의 별.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나는 이리저리 예루살렘 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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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여행 관련 포스팅(클릭 후 이동)
Drinking the dark coffee in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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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을 때도, 시원한 음료를 마실 때도, 진한 커피 향을 맡을 때도, 그들의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나는 이 예루살렘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잃어버린 보석을 찾듯, 신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예루살렘을 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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