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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스라엘 여행

유대인에 관하여

by 하 루 살 이 2018.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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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한국 언론 대다수는 유대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댓글을 보면 대다수 한국인이 마치 유대인을 혐오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댓글만으로 여론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침묵하는 다수가 오히려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댓글의 형식 만으로 한국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댓글을 유발하는 기사들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걸 보면 국내 언론의 시각이 유대인에 곱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유대인을 향해 살인자라고. 인권 탄압자라고. 그렇게 비판하고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알고 있는 유대인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 그 험난한 역사를 알면 현실의 복잡성과 해석 불가능함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역사를 아는 자들은 단순하게 유대인을 부정하진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년 2월 이스라엘 여행은 유대인을 더 많이 알고자 했던 여행이다. 


그때 들고 간 책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었다. 나는 그것이 여행 가이드북보다 훨씬 훌륭한 가이드북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자주 생각에 되뇌인 책은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이다. 그 섬세하고 사려깊은, 그러면서 절제된 문장을 통해 예루살렘의 두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의 이 책이 나의 20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여기에 다 설명하기 힘들다. 


특히나 최근에 와서 그의 책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유대인은 어떤 민족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그의 책은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의 정신과 감정, 역사적 트라우마와 성서적 오묘함을 모두 느끼게 해주는 훌륭한 유대인 참고서가 되어 준다. 


유대인은 탄압자가 아니다. 단순하게 그렇게 비난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기엔 지난 2000년의 역사가 그들에게 

너무 가혹했고, 매우 잔인했다. 


피해자로서 유대인은 어디서든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역사의 고통이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폭력을 정당화할 생각은 더욱 없다.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린 비겁해진다. 


문제는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다. 왜 폭력이 자행되는가. 왜 전쟁이 발생하는가.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억암하고 왜 가자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파멸을 계획하는가. 


단순히 이스라엘을 저주할 일이 아니다. 유대인은 1948년 전후로 이스라엘 땅에서 비참하고 참혹한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그들이 갈 곳은 죽음 그 자체 외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분리하자는 두 국가 해법 Two state solution 을 지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라를 반이라도 쪼개서 팔레스타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팔레스타인과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움직이는 아랍권이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친다. 유대인의 완전한 자멸을!


지금 누가 평화를 갈구하는 건가. 누가 해결책을 내놓고 그곳에 사인해달라고 사정하고 있는 건가. 팔레스타인이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이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테러리스트, 아랍 강경세력이 이 '자멸'을 외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유대인보고, 이스라엘 국가보고 앉아서 당하라는 말인가? 다시 홀로코스트를 재현하라는 말인다. 다시금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인간 살육의 역사를 되살리자는 말인가!. 




최근 숨겨진 기사 중 하나가 시사저널의 이스라엘 대사 인터뷰다. 여기에 재밌는 내용이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이라고 말하고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일이 있다. 이스라엘 비난 여론이 국제적으로 일었고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주한 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우리는 예루살렘과 관련해 타협할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이 살 지역과 관련해 대화할 의향이 있다. 우리는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으로 얻은 매우 큰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줬다. 


하지만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인정하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반이스라엘적 태도를 지속한다면 변화는 없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 



이 사진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 Yad Vashem Holocaust History Museum 내부 모습이다. 


유대인은 염원은 '사는 것'이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공존은 여기에서 풀 수 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의 말은 이런 것이다. 그들도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는 말이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면 이것이다. 유대인의 완전한 생명 보장. 


그렇다. 유대인은 2000년의 역사를 겪으며 이것 하나만이라도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누군가로부터 개만도 못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 한 가지.' 생명 보존을 요구하는 것. 


유대인을 함부로 비판하면 안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홀로코스트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모사드에게 잡혔다. 그가 예루살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때 그에게 주어진 죄명은 이것이다. 


인류에 대한 범죄.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범죄.


인류가 겪어 본 적 없는 죄악을 인류가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은 유대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역사가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유대인의 참혹한 역사를 외면하면 다른 곳에서 인류에 대한 범죄, 어느 민족에 대한 범죄, '누군가'에 대한 범죄까지 외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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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 앞에서 노래하는 유대인 영상

이스라엘 가이사랴 수로를 가다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그 잔잔함에 관하여

이스라엘 텔아비브 항구에서

나는 홀로 이스라엘로 향했다

악을 사고할 능력이 사라진 무관심의 결과물…'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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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문제는 유대인 생존을 위한 그들 간의 타협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 서로가 양보해야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종교적, 민족적 타협점을 찾기 힘들기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그 결과 죄 없는 난민들만 고통받을 뿐이다. 정치인들의 욕심이 여기에 작용한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 현 이스라엘 땅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걸 무시한 채 단순하게 유대인만을, 이스라엘만을 비난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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