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중에서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2017년 2월 18일부터 이 글을 쓰는 2월 26일까지 총 7박 8일 일정으로. 이스라엘을 간다고 했을 때 하나같이 "왜 하필 이스라엘?"이라고 물었다. 긴 휴가를 받을 경우 유럽 동남아 휴양지를 떠올릴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전혀 뜻밖의 나라였다. 내 솔직한 마음은 이랬다. "이번에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
누구에게나, 어떤 이유로든지 한번은 가봐야 할 나라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철학을 위해 인도일 수 있고, 체게바라와 재즈를 위해 자메이카일 수 있다. 영화 한 장면 때문에 모로코가 될 수도, 카뮈의 '이방인' 때문에 알제리가 될 수도 있다. 나름의 이유다. 그렇게 자기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나에겐 이스라엘이 그랬다.
이스라엘.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린 나에게는 이스라엘은 고고하고 도도했다. 거룩한 선지자의 나라였다. 예수가 태어나고 죽은 나라였다.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나라였다. 나는 내 눈으로 그곳을 보고 싶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골목을 거닐고 싶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가 있다. '쉰들러리스트'다. 10대인 어린 나에게 이 영화는 인간성의 상실을 알려줬다. 충격적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를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유? 잘 모르겠다. 인간성의 상실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유대 역사를 찾으며 고민했다. 그게 나름 재미있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임레 케이테스의 '운명', 토마스 프리드먼의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이후 '뮌헨', '지붕 위의 바이올린', '피아니스트' 등이다. 이 외에 수많은 영화가 유대인의 핍박을 알려줬다. 치욕과 수모를 말했다. 인간성의 상실을 설명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만연한 죄악의 실체였다.
하나 더 있다. 성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베드로가 예수를 배반한 밤 이야기다. 베드로는 잡혀가는 예수를 멀찌감치 따라간다. 예수가 대제사장 집 안으로 잡혀 들어가자 베드로는 그 집 근처에서 섰다. 막연했다.
이후 펼쳐진 장면이 지금도 생각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베드로는 밤 기운에 추위를 느꼈다. 사람들이 피워놓은 장작불에 가까이 간다. 성경은 그 순간을 '날이 추운고로'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불을 쬐는 이유는 명확했다.
날이 추운고로.. 그날 밤은 유독 어두웠다. 사람들은 곳곳에 피워둔 불에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어두운 밤 거리에 모인 사람들 얼굴은 뜨거운 불빛을 통해 불안한 영혼을 비춰냈다. 그들의 심각한 표정은 불안감을 더 크게 했다. 예수가 잡힌 밤이다.
한때 그들은 소리질러 '호산나' 부르며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중에 빌라도 총리에게 소리 지른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이 밤은 인류 역사를 뒤바꿀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누구도 예수의 잡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불확실함에 두려움만 느꼈을 뿐이다. 예루살렘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할 짙은밤을 맞았다.
그때였다. 한 어린 여종이 베드로에게 오더니 소리친다. "너도 그 당이지!". 베드로 눈에는 여아의 얼굴만 보였다. 그 얼굴에서 소름끼치는 눈빛을 발견했다. 너도 그 당이다!
몇 시간 전 만해도 예수를 잡으러 온 무리 중 말고의 귀를 칼로 베어버린 베드로였다. 그런 그가 여종의 말 한마디에 기겁한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다. 본인이 직접 그리스도라고 말한 예수를 부정한다.
그때 닭이 운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건만 닭이 울었다. 예루살렘 밤은 인류 역사를 다시 쓰는 밤이었다. 밤에 닭이 우는 건 예삿일이었다.
베드로가 그 닭 소리에 기겁한다. 예수는 "닭 울기 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골목을 방황했다. 어딘가에서 '슬피 울었다.'
일주일간 머물렀던 이스라엘은 베드로가 느꼈던대로 추웠다. 해가 지면 턱이 떨리고 이가 부딪혔다. 그 추위를 느끼며 나는 예루살렘 구도시 골목을 걸었다. 추위와 고독이 휘몰아쳤다. 바람이 거셌다. 잠바를 입고 몸을 감싸야 했다. 황토색 벽면에 손을 대면 바람보다 더 찬 기운에 몸이 떨렸다. 예루살렘 추위는 날카로웠다.
이스라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한 이국적인 나라다. 충분히 알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맞부딪힌 문제는 지독한 낯섦이다. 낯선 장소 아무데나 걷다 무심코 섰다. '지금 어디에 있지'라고 물었다.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하자 심각해졌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지..
인류 역사를 바꾼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나는 막연하게 서 있었다. 불확실함에 두려웠다. 랍비들이 검은 옷을 입고 무심하게 나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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