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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스라엘 여행

[이스라엘 여행] 통곡의 벽 앞에서 노래하는 유대인 영상

by 하 루 살 이 2017.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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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독특한 부분이 있다. 어딜가나 노래 부르고 즐거워한다. 이스라엘 여행을 하다보면 아래 영상과 같은 노래하고 춤 추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선 더욱 그러하다.  


이 영상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통곡의 벽' 근처에서 찍은 영상이다. 통곡의 벽을 다 보고 나왔을 때 유대인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신기한 모습이라서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었다. 그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며 악기를 다뤘다. 무엇 떄문인지 모르나 너무나도 기뻐했다. 즐거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이 한껏 기쁨에 취해 다른 이들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 영상을 찍고 감란산을 향해 걸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기쁨에 취하게 했을까 곰곰히 생각하며. 고민의 시간은 이들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남은 시간만큼 길어졌다. 




이런 생각이 스쳤다. 

유대인은 수천년 동안 투쟁의 역사를 걸어왔다. 역사 속에서 이들은 인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는 정신을 길러왔다. 그 정신이 19세기, 20세기 초 당시 시오니즘을 발현했다. 시오니즘은 다른 게 아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에 저항한 혁명의 다른 이름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손들에 이 투쟁의 가치를 가르쳐왔다. 투쟁의 교훈은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홍해를 건넜을 때부터 시작한다. 갈라진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은 붉은 바다가 그들의 자유를 말살하고자 한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를 엄몰하는 것을 바라봤다. 그렇게 거대한 바다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한 해방을 맞았다. 억압을 제거하고 자유에 대한 적대성에서 벗어났다. 


그때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여인들과 함께 축복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한없이 기뻤다. 압제와 고통에서 해방된 것을 노래했다. 비록 험난한 시내 광야 시대가 그들 앞에 펼쳐 있지만 그들에겐 분명 '자유'가 있었다. 자유하게 됐다. 


그 이후 역사는 바뀌어 기원후로 접어들고,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 국가가 된다. 지난한 세월을 거친 뒤였다. 이스라엘 독립된 땅으로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간혹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에선 이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력과 로비력을 총 동원해 러시아에 있는 유대인을 데려오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검은 유대인'을 구출한 사건은 역사에서 길이 남은 군사적 작전이 됐다. '솔로몬 작전'이 작전명이었다. 




독립국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유대인은 하나같이 땅에 얼굴을 대고 키스했다. 신께 감사를 올렸다.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2000년 가까이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차별과 투쟁을 이어온 유대인들이었다.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숨을 죽이며 가족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온 유대인이었다. 


그들 마음엔 시오니즘이 불타고 있었다. 이스라엘 독립 직전, 삶에 대한 필사적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고 유대 민족의 해방 의지가 사라질 때쯤(히틀러의 등장으로) 이들 마음엔 '조상의 땅으로'라는 시오니즘이 강하기 일고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시오니즘을 '시온의정서'와 착각한다.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큰 것을 분리하지 못한다. 시온의정서는 유대인을 오해해 만들어진 책이다. 온 인류의 굶주림과 병, 불편함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책임 지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유대인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정당성을 심어주기 위해 등장했다. 유대인 핍박용이었다. 


유대인의 생각은 전혀, 너무나 달랐다. 유대인은 수십세기를 거치며 살기 위해 몸부림쳐 왔지 인류를 구워 삶겠다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유대 역사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온 역사였다. 문명 사회에서 소외는 그들의 숙명이었다.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18세기, 19세기가 오면서 유대인의 핍박은 심화됐다. 20세기가 되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유대 민족에게 주어졌다. '우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 시오니즘이 이들 뇌리에 주어진 것도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에 대한 민족적 사형선고가 내려지면서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시오니즘의 시작은 민족적 파멸의 시작에서 동시에 생겨났다.  



위 아래 사진 / 통곡의 벽에선 정말 기쁨에 흠뻑 취해있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조상의 땅에서 구약 성경을 읽는 것을 소중하고 위대한 일로 여긴다. 놀라운 장면들이다. 구약 성경을 이동시킬 때 이들은 노래 부르고 환호했다. 정말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사진 / 어린 아이가 통곡의 벽 근처에 있던 나를 사진 찍어주고 있다. 



2000년간 떠돌아다닌 유대 민족은 그 민족의 뿌리를 잃지 않고 이 땅에 오게 됐다. 이스라엘 건국은 기적이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소외의 극복이며, 혁명과 투쟁의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기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 땅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다. 이 땅에는 유대 민족이 몰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상징이 있다. 그들은 자유를 얻었다. 자유롭다. 신을 찬양할 자유가 가장 클 것이다. 큰 소리로 신을 향해 소리 높일 수 있는 그 자유 말이다. 그들은 미리암처럼 노래 부르고 춤췄다. 남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이 사실에 그들은 더욱 격렬하게 춤을 췄다. 노예 해방의 자유가 그들 핏속에 흐르고 있었다. 저 너머 어떤 강한 힘이 그들을 보호할 것을 그들은 믿고 있었다. 민족의 기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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