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정이 돼 집에 온 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일기를 썼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여유가 생기기만 하면 손바닥 만한 수첩을 꺼냈다. 그 순간의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쌓여가는 일기는 나만의 역사가 되어 갔다.
이스라엘 여행에서도 나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스쳐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놓으려 펜을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2017. 2. 24. 금. 08.37. 텔아비브 올드 욥바.
베드로가 광주리 환상을 본 장소. 텔아비브 해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곳. 어릴 적부터 꿈에나 볼 수 있어 동경의 장소였던 텔아비브. 나는 첫날 늦은 밤 이곳에 도착했고, 떠날 때도 이곳을 방문했다. 지중해 파도 소리가 듣기에 좋다. 오늘은 텔아비브 마라톤이 있는 날이다. 도로 곳곳이 통제 돼 있다. 공기가 참으로 상쾌하다.
역사가 그 어느 도시보다 깊고 애환이 많은 이곳. 오게 되었고, 나는 이제 떠난다. 그리울 것이다.
2. 24. 예루살렘 올드시티.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고 좀 지치는 것 같아 예루살렘 성 안, 다윗성, 욥바문 가까이에 있는 한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금요일 예수 순례길 행진을 보고 따라가다 길을 잃어 그만 두었다. 역사적 근거 없이 누군가가 18세기에 정한 이 길을 굳이 따라갈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여기 어디에선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덜어지고 아낙네들의 눈물이 흘렀을테니 이 정도 수고는 해볼만 하다 싶어 따라가본 것 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예루살렘..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도시일 것이다.
이토록 낡고, 미로 같은 골목에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 상점에 들어가 대접 받아온 사람은 뭐 이런 도시가 다 있나 싶을 것이다. 나도 그 무뚝뚝한 사람들 태도에 줄 곳 당황 했으니까.
하지만 역사를 아니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 그 역사의 깊이가 도시 곳곳에 도시 깊숙이 파고 들어 흡수 됐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연기처럼, 안개처럼 도시 안에, 나라 안에 퍼져 나간 것이다.
절망과 고통, 희망과 행복이 모든 감정이 예루살렘보다 더 잘 표현된 도시가 또 있을까. 해석이 불가능한 이 도시에서 느끼는 건 그래서 어디에서도 겪어 본 적 없는 역사의 숨결이다.
다시 돌아가면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매일 발제 마감에 시달리고 여기저기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가 나를 엄습하겠지. 그럼... 이곳이 떠오르겠지. 지금 이 순간이 떵로라 내 현실을 안타까워 하겠지.
한 가치를 발견하고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이 죽어간 곳, 예루살렘.
각자 종교는 다르고 인종도 다르나 자기만의 가치와 철학, 신념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돈과 상관없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다해 살았기에 그들은 역사에 남았고, 그 역사는 도시를 만들었고 그 도시에 나는 지금 잠시 쉬어가며 글을 쓰고 있다.
할 일이 하나 생겼다. 돌아가서 죽어 있던 블로그를 살려내 이스라엘을 써야지.
날이 참 좋다. 구름 한 점 없다. 이런 좋은 날 나는 예루살렘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일기를 쓰다니.
그 어느 곳에서 쓴 것 보다 더 기쁘고 설렌다. 수 없이 쓴 일기에 날짜와 시간, 장소를 적어왔는데... 이곳에서 날짜와 시간, 그리고 '예루살렘'을 적게 될 줄이야...
어릴적부터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그 나라에 대한 깊은 동경을 품고 살아왔다. 어쩌다 이스라엘이었는지..
뉴욕타임즈의 프리드먼도 어릴 적 그랬다지만,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였을까. 커오면서 죽음의 수용소, 이것이 인간인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요세푸스, 쉰들러리스트, 지붕 위의 바이올린, 뮌헨, 피아니스트 등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에서 이스라엘을 생각하고 느껴왔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한 마음에도 이스라엘에 왔고, 지금 예루살렘 노천카페에 있다.
내 나이 서른 둘... 적기에 온 것이겠지. 그 분 또한 이 나이에 예루살렘에 오셨다. 그 내용이 나의 사랑하는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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