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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스라엘 여행

예루살렘의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면서

by 하 루 살 이 2018.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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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일에 집중하다 보면 불현듯 이스라엘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이런 저런 일에 많이 지쳐있었고 잠시 쉬고 싶었다.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나라가 이스라엘이었고 나는 그곳을 향해 떠났었다. 

 

동경의 나라. 치욕과 실패의 연속, 민족 말살을 버텨낸 유대인의 나라. 그 나라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생존의 위협을 느껴며 그래도 삶을 영위해나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웃음을 보고 싶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나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찾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딱히 알 순 없었지만 대충 이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이스라엘로 향했던 것이다. 

 

긴 시간의 비행도 나에게는 큰 행복의 시간이었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자 나는 지상의 업무와 완연히 이별할 수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연락할 수 없었고, 나도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끝을 모르는 일의 중압감을 떠나게 된 것이다. 14시간의 자유였다. 나는 영화를 보다 잠들었고 다시 깨어나 책을 읽었으며, 이스라엘을 떠올렸고 딴생각을 했다. 내일 걱정할 것은 내일 걱정하고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라고 말한 예수의 소리를 들었던 2천년 전의 이스라엘 민족들. 그들도 이 목소리에서 나와 비슷한 자유의 가능성을 엿보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예루살렘의 커피를 꼭 마셔보라고 말하는 이스라엘 여행 영상을 이곳에 가기 전에 본 터였다. 그랬다. 이스라엘의 커피는 한국 땅에 흔해 빠진 프랜차이즈 커피와 분명 달라도 뭔가 다를 것이었다. 나는 예루살렘의 커피 향과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 깊고 진한 커피를 음미하고 싶었다. 진한 인생들의 삶을 그 커피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 돌고 도는 삶의 수레바퀴에서 떠나 진짜 내 인생의 삶을 살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커피 한 잔만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희망이란 이런 작은 것에서 찾는 법 아니었던가. 

 

하지만 일주일 내내 나는 예루살렘이든 이스라엘의 다른 도시, 가령 나사렛, 디베랴, 하이파, 텔아비브 그 어느 도시에서도 커피 장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나는 더 큰 실망을 피하고자 얼른 희망을 내려놓고 이스라엘 여행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다 마지막 날. '그래도 이스라엘 여행의 마지막은 예루살렘에서'라는 생각으로 차를 몰고 다시 예루살렘을 향했다. 예수의 마지막이 그랬듯 나의 마지막 여행 장소도 예루살렘이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 마지막의 예루살렘은 참으로 나에게 차분하고 여유롭게 다가왔다. 나는 천천히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걸었다. 여유를 가지고 유대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폈다. 타인의 삶을 보며 나는 내 삶을 잊어갔다. 일종의 탈아脫我 였으며 그것은 또한 삶의 자유를 되찾는 효율성 높은 방법이리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저 골목 어딘가에서 커피 장수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그날. 나는 포기한 희망을 다시 주워 담는 기분을 느꼈다. 버려진 희망을 심장 어딘가에서 발견한 것 같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작은 것에서, 인간의 의도와 계획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신의 섭리가 일어나는 법인가 보다. 

 

커피 장수는 무뚝뚝했고 한화로 약 1500원을 받았으며 철로 된 주전자에 커피를 넣었다. 눈으로만 봐도 아주 세 보이는 불에 커피를 순식간에 끓였다.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주었다. 와..상상 이상의 진한 커피였다. 이 고소하고 쓴 맛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겠는가. 혀에 감기는 커피는 거칠었고 목을 타고 넘어간 뒤에도 진한 향이 입안에 오래 남는 기분이었다. 이런 커피는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이런게 역시 커피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난한 장수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커피 장수의 옅은 미소가 사진에 담겼다. 

 

 

 

 

커피를 마시고 예루살렘을 계속 걸었다.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억 속에 담고 또 담아내려 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장면과 추억을 뇌리에 새겨내는 작업이었다. 많은 기억들을 담아내고 나면 훗날 마음이 어두워 질 때 이때의 기쁨을 떠올려보고 예루살렘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여행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고, 더욱이 훗날 일종의 삶의 보루가 되어줄 것이었다. 여행은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럼 나는 새로운 장소로 희망을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목이 말라 과일 주스를 파는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이 오렌지를 직접 갈아서 주스를 만들었다. 그것을 마시며 나는 언제나 그랬듯, 그 순간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다시 못 올 수도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나는 더욱 정중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그때의 나를, 언제나 힘들고 어려울 때, 감정이 복잡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그때의 나를, 감정이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절제돼 있었던 나의 하루를 기록한 그 글을 다시 읽어보고 이때를 추억하기 위해. 그렇게 감정을 세심하게 적어 내려갔다. 

 

 

이스라엘 여행 포스팅(클릭 후 이동)

 

Drinking the dark coffee in Jerusalem

이스라엘 여행 중 쓴 일기

천혜의 요새 마사다에서 찍은 영상

예루살렘은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예루살렘 주차장

이스라엘 텔아비브 항구에서

통곡의 벽 앞에서 노래하는 유대인 영상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찍은 영상

나는 홀로 이스라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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