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에서 신경써서 했던 것이 하나 있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다.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유대인. 그들을 자세히 바라보는 일이었고, 그들의 그늘을 사진으로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성경적으로 선민이고, 정치사회적으로 탁월한 민족이었다.
유대인.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고민이 된다. 오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을 가리켜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민족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부 과격한 정치적 팔레스타인에 의해 그들의 운명과 이스라엘에 살고자 하는 민족적 열망이 뒤엉키게 됐다고 말해야 옳다.
이스라엘은 되려 팔레스타인과 타협할 자세가 있다고 줄기차게 말해 왔다. 팔레스타인 정치세력만 "이스라엘은 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이스라엘이 오히려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은 완전한 평화 보장을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들을 향해 일부 세력이 공공연히 "너희를 몰살하겠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이 앞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나. 군사적 긴장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을까.
유대인에게 가장 두려운 목소리는 바로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였다. 유대인을 바라보면 그늘은 그래서 언제나 짙었다.
이 구호가 역사 속에 유럽을 휩쓸었던 적이 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실재했다. '유대인과 개는 상점에 출입할 수 없다'는 문구가 보란듯이 상점 문에 붙었다. 유대인을 태운 잿더미가 바람을 타고 가정집 지붕에 뿌려졌다. 악몽이 현실이 되던 날들이다.
상처는 가해자의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가슴에 꽂혀 있는 칼자루이자 그 속에서 여전히 심장과 폐부를 찌르고 있는 칼날이다. 그것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남긴 결과물이다.
유대인은 100년 전부터 외쳤다. '시온으로 돌아가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조상의 땅으로 가자.'
이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도 살고 싶다.
너희들처럼.
사람답게.
지금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은 하지만 언제나 자신들을 몰살할 준비를 부지런히 하는 나라와 민족, 세력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그 땅 어디를 둘러봐도 그토록 차갑고 경직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질 때면 이방인의 눈에 이스라엘은 너무나 두려운 곳이었다. 엄숙함과 음울함이 예루살렘에 밤의 어둠보다 빨리 찾아왔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나는 그들을 통해 이런 분위기를 사진에 담으려 했다. 그들의 내면을 보기를 원했다. 그들의 강인함은 나약함에서 발현했으리라. 나 또한 나약한 인간이다. 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모든 종교적 가치 이면에 존재하는 유대인들의 진짜 표정을 보고 신을 엿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신은 어느 교회의 시끄럽고 난잡한 마이크 소리와 드럼 소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유대인을 바라보며 드는 수많은 생각들을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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