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우리는 왜 신을 믿는가. 우리는 왜 신을 찾는가. 바로 영원성 때문이 아닐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열망으로 신을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스라엘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감람산의 무덤 사이를 한참이나 걸어 올라갔던 경험이다. 유대인의 죽음. 성경 에스겔에서 선지자 에스겔이 뼈들이 살아 움직여 거대한 군대가 되는 환상이 떠오른다. 생기가 그 군대에 들어가는 장면들.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독특하다. 돌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돌맹이를 올려 놓는다. 죽은 자를 이렇게 기린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물을 길 없어 그저 바라봤다. 누군가의 무덤에서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바라만 봤다. 죽음을 말이다.
감람산 중턱에는 이렇게나 많은 무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감람산은 메시아가 서실 땅이다.
그 땅에 이렇게나 많은 무덤이 있다. 유대인은 희망의 민족이다. 이토록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꾼 민족도 없다. 모든 예술에서 뛰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희망에 거한 정신 때문일지 모른다.
삶의 고통을 느끼며 비록 지금 당장 경험할 수 없으나 그 보이지 않는 미래의 희망을 확신하며 그들은 죽어갔다.
감람산을 가기 전에 기드온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나는 감란산 무덤들을 찍었다.
감란산 무덤들을 가로지르지 않고 차로 그냥 통과할 수도 있다. 성지순례 패키지로 가면 그렇게 갈 것이다. 나는 혼자였다. 당연히 나는 그 무덤을 피부에 와닿는 거리까지 가까이에 가서 보고 싶었다. 감람산을 직산했다.
참 더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무덤들 주위로는 사람하나 없었다. 간간이 새들이 놀러왔다. 죽은 이들을 기려주는 돌맹이들이 간혹 보이곤 했다.
어릴 적 본 영화 '쉰들러리스트'가 떠올랐다.
그 영화의 마지막에는 영화의 실재 인물들이 나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안치된 쉰들러의 무덤에 줄을 서서 돌맹이를 올려놓고 있었다. 타고난 추진력과 거침없는 정의감 하나로 앞 뒤 가리지 않고 수천의 유대인을 살린 인물을 위해 묵념하고 지나갔다.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이스라엘의 감란산 중턱에서 멀리 이스라엘 구시가지를 찍었다.
멋진 장면이었다. 흑백의 도시 한 가운데 황금 사원이 서 있었다. 관광객의 눈에는 절묘한 조화이겠으나 유대인의 눈에는 좌절의 장면일테다.
저 곳이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드리려한 모리아산이며, 솔로몬이 유대 첫 성전을 지었던 곳이고, 2대 성전이 있었던 장소였다.
저 황금 사원 근처에 있는 통곡의 벽에서 오늘도 유대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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