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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벨문학상 수상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by 하 루 살 이 2018.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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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이토록 빨리 추워질 줄 몰랐다. 그토록 더웠던 날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차가워진 걸까. 주위의 변화는 참으로 기이하다. 


그래서일까. 평소 읽기 힘들어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도시'가 그나마 이전 날들보다 잘 읽혔다. 이 소설의 온도는 지극히 차다. 겨울을 배경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렸고, 그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겨울을 헤매는 길 위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나는 어찌나 먹먹한 기분을 느꼈나 모른다. 




"브레데가 차를 세우고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순간, 나는 어떤 막연한 예감을 느꼈다. ...

그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금도 아직 꿈속에서 내가 다시 보곤 하는 그 이상한 웃음. 

나는 베송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드니즈는 앞쪽에 있는 브레데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또다시 어떤 예감이 내 가슴을 꼬집는 듯했다. 나는 차문을 열고 그녀에게 내리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둘이서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천성적으로 매우 의심이 많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억눌렀다. 그녀는 손으로 나에게 키스를 보냈다."


"십여 분이 지난 후 나는 그(베송)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 때문에 나는 드니즈를 이 함정 속으로 끌어들인 것일까? 나는 사력을 다하여, 브레데가 그녀 역시 버릴 것이며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리라는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 여전히 눈이 오고 있었다. 나는 헛되이 어떤 목표물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계속하여 걸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쓴 파트릭 모디아노는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사랑을 받는 작가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작가였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책을 알만한 사람들의 손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의 책에 소개된 상실감은 그 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그렇게 일종의 향기처럼 그의 소설들이 퍼져나가게 됐고, 결국 노벨문학상의 전당에까지 향기가 다다랐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기억', '정체성', '시간'을 썼왔다. 


그의 삶은 2차 세계대전의 후반에 시작되었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 참혹한 시절을 견딘 유대 가문이었고 그들은 기억과 정체성의 끊어짐, 평범한 삶의 상실 속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끊어진 기억. 타인에 의한 폭력. 파트릭 모디아노가 자라며 바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일종의 기억상실자들처럼 과거 어느 부분을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잃어버렸고 끊어진 세월 사이의 간격을 메꾸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주인공은 모든 걸 잃어버린 남자다. 


그리고 그는 그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기억상실자였다. 그리고 그가 기억이 상실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 흥신소 사장은 그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그 과거라는 것, 찾아봐야 당신에게 더 큰 상실감을 안겨다 줄지 모른다. 나와 함께 일하자. 과거는 잠시 놔두자. 그렇게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도 모른채, 새 이름을 가지고 누군가의 비밀과 정보를 파헤치는 직업을 수년 간 계속한다. 


그리고 그 일들도 다 끝나버릴 시기가 다가왔고 주인공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작한다. 흥신소 사장은 노년을 따뜻한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에서 보내기로 한다. 파리에 남겨진 흥신소 사무실은 주인공에게 맡겼다. 그는 그를 찾아나섰다. 



프랑스 파리가 이 소설의 배경 무대다. 그리고 추운 스위스 국경 눈 덮인 어느 조용한 시골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기억을 상실하고 마는 장다. 주인공과 친구 4명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곳에서 모두 흩어져 버렸다. 


여전히 눈이 오고 있었고 주인공이 헛되이 어떤 목표물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계속하여 걷는 장면에서 소설은 끊어졌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가 다시 찾아간 스위스 그 지방은 봄이었고 눈이 녹아 있었다. 택시 기사는 봄이 모든 주변 광경을 바꿔놓는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그들을 추적하는 과정은 정밀하나 사라진 이들의 흔적은 희미했다. 사랑하는 그들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그들의 얼굴을 꿈속에서나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 꿈 속의 사람들은 웃는지, 우는지조차 알 수 없게 흐려진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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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주소들을 구글 지도의 거리뷰를 통해 볼 수 있었고, 그곳이 에펠탑 근처 골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소설들을 더 현실감 있게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나는 파리에서 그 거리를 걷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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