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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김훈 '라면을 끓이며'

by 하 루 살 이 20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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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기자를 묻는다면 나는 '김훈'을 먼저 꼽는다. 기자는 많고 그는 현재 기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언급한다. 이상하게도 이 삶의 이름이 뇌리에서 가장 빨리 떠오른다. 이름이 쉬워서 일수도 있다. 


그에 대한 평은 엇갈린다. 비난 어조로써 그를 마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도 말한다. 그를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접해본 자들의 평이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그를 전혀 겪어보지 못했다. 그 런사람을 알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잡다한 근거없는 평에 의지하지 않고 그의 글을 읽는 것이다. 사람을 알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라면을 끓이며'. 


"김밥은 끼니를 감다알 수 있는 음식이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밥 먹기의 엄숙성에서 벗어나 있다. 김밥은 끼니이면서도 끼니가 아닌 것처럼 가벼운 밥 먹기로 끼니를 때울 수가 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때, 나는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삶의 하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김밥의 가벼움은 서늘하다. 크고 뚱뚱한 김밥은 이 같은 정서적 사명을 수행하지 못한다.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난 내용물이 쏟아져나올 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나는 김훈의 글을 밤에 읽는다.

시간 대는 12시를 넘은 새벽 시간이다. 그래야 잘 읽힌다. 왜 그런지 모르나 밤 중 고요한 때, 마음도 차분해질 때 김훈의 글이 읽힌다. 천천히 음미가 가능하다. 낮에는 김훈의 글이 부담스럽다. 그의 글은 일단 무겁고 진중하다. 딱딱하다. 그리고 깊다. 낮엔 이런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  


'라면을 끓이며'도 그렇다. 




이 책은 그의 일상을 그려냈다. 김훈의 정신과 철학을 담았다. 김밥 하나, 라면 하나까지도 그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소박함을 이야기한다. 소박함이야말로 수준 높은 삶의 태도일 수 있다고 그는 본다. 밥 한끼와 반찬 몇 가지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식탁을 차릴 수 있다. 음식도 소박한 방법을 통해 매우 훌륭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거기에서 여러가지가 섞이면 본연의 맛을 흐트리릴 수 있다. 모든 감각은 단순할 때 되살아난다.  


삶도 그렇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작은 집과 식탁과 음식과 음악과 책.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면 된다. 좋은 차도 없어도 된다. 렌트카를 빌리며 더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욕심이 과해 내 욕심을 채울 것을 강요하기 시작하면 가정은 불행해진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해 발생하는 고통이다. 결국 모든 걸 잃고도 회복하지 못할 만큼 더 빼앗기고야 만다. 그리고 남은 건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비난 뿐이다. 



김훈의 글도 소박하다. 

대단한 표현을 가미한 글은 그의 문장에는 없다. 그것을 그는 더 좋아한다. 다소 투박할지언정 보다 솔직하다. 그래서 제목도 그런가 보다. 


날이 추워졌다. 사람들마다 멋을 부리며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의 이 유행을 못따라가고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옷은 그에 비하면 구질구질하다. 가끔은 멋지게 정장을 차려 입고 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공허함을 느낀다. 속이 안 차고 겉만 번지르르한 제비족이 된 건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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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은 속이 가득 찬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 꾸미든, 꾸미지 않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보통 삶 그대로를 즐긴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참 지겹고 귀찮을 뿐이다. 그저 잘 끓인 라면 하나로도 행복하면 됐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아부와 아첨의 말을 버리고, 허세와 허풍을 멀리하고, 절제와 정돈된 삶 속에서 자유와 여유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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