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를 소개하는 여러 매체를 보면서 그와 그의 책에 흥미를 가지던 차, 서점에서 그의 최신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보고 구매를 할까 말까를 잠시 고민했다.
그의 역작이라 불리는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먼저 읽어야 이 책이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 '미션임파서블'이 그토록 유명해도 앞에 이어지는 미션임파서블 영화들을 못 봤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 '먼저 앞선 영화를 봐야 이번 개봉작을 더 재밌게 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이 책을 살 때도 들었던 것이다. 남들이 다 웃는 장면에서 나만 멀뚱멀뚱 있는 상황은 그리 유쾌하진 않으니까.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가 워낙 유명한 책이라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도 그 두 앞선 책의 후속작처럼 여겨졌고, 구매하기를 선택하는데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그런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유발 하라리의 독립된 창작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다른 책들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출판의 순서적인 차원이 책을 집중하는데 방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을 읽은 뒤 다른 책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라는 점에서 손색이 없었다. 다양한 주제를 독특한 통찰력으로 해석한 점에서 재미를 키웠다.
특히 이 책은 미래에 다가을 인류의 위협이라는 큰 주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개인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를 통해 미래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야기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사실 우주와 같은 큰 차원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한 개인을 향한다는 점에서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기술이 특히 생물학적 기술과 결합하면 개인의 생각과 욕망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조작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인류도 모른 채 말이다. 효율성과 인류 혜택 증진이라는 명목만 인공지능 연구 위에 포장된다면 누구도 이 기술 발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그 발전의 속도가 점점 위험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현실을 그는 제시한다.
지금도 내가 본 상품에 관한 광고가 인터넷 창에 뜨고 있다는 점도 유심히 생각해 볼만하다. 이 수준이 어느 수준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개인의 문화 생활, 여행 기록, 구매 이력, SNS 내용, 인터넷 정보 검색이 모두 인터넷을 통해 저장되고 나의 행동 패턴과 생각의 구조는 모두 데이터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보들이 차후 기업에서 소비자의 구매를 충돌지하는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
금융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금융은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 알고리즘을 통한 대출 허용 또는 거부가 현실화 되고 있다. 지금도 은행원은 고객의 대출 거부 이유를 잘 모른다. 데이터 입력을 통한 결과만을 가지고 고객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알고리즘의 데이터 분석이라는 것으로 발전할 경우 은행원은 이때부터 전혀 대출 거부 이유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 금융의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해지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알고리즘 분석을 통한 대출이 차후 연체율을 최소화 한다는 것이 통계로 나오면 은행은 인공지능 도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공지능의 기술적 파괴를 몹시 우려한다. 인간을 벗어난 인공지능이 인간을 문명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예에서, 기업 면접도 인간의 능력은 주관적 편향에 따른 무가치한 것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 면접을 통해 면접자의 과거 행적만 분석하는 게 아니라 질문에 답하는 능력에서 표정 변화까지 모두 분석해 낼 수 있다. 영업사원이면 영업에 필요한 능력을 가졌는지, 변호사면 그 로펌에 맞는 사람인지,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럼 인간 대 인간의 면접은 바로 사라질 수 있다.
건강관리도 의사의 손을 벗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그 사람의 신체 분석을 통해 모든 필요한 약을 제공하고 변화를 체크할 것이다. 그것을 회사가 직장인의 건강 관리라는 이유로 일정 정보를 받는 상황이라면 인공지능이 제시한 건강 관리를 거부한 사람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일부 수술에선 인간 손에 의한 수술이 불법이 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자율주행 도로는 어떤가.
차후 모든 차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 교통사고 제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의 운전 불법화'가 법으로 명시될 수 있다.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지금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의 판단을 인간이 믿지 못하는 세상이다. 인공지능이 그런 판단을 인간이 내리도록 만들어 나가고 있다.
더욱이 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인공지능 무기 체계는 끔찍한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전쟁에 나가서 달성하는 수준은 인간의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완벽할 수 있다.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에선 명령을 받은 군인이 혁명 시민들에게 발포하기를 거부한 사례가 있다. 시위대를 진압하라는 인공지능에게 그런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명령의 완료를 위한 효율적인 방법만 찾을 것이다.
디지털 정보사회가 인공지능의 기술과 생체적 기술과 합쳐지면서 결국 역사에서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완벽한 감시체제에서 인류가 인간성의 파괴를 목격할 수 있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당장 현실에서도 현실의 복잡성과 고도화된 기술들로 인해 인간은 점점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엔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지금은 넘치는 정보로 인해 인간의 지각 능력은 위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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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나 짧은 기사들을 통해 인간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흡수하는 세상이다. 이런 양상은 우주의 팽창 속도를 따라잡을 정도로 갈수록 빠르게 확대된다.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타인은 누구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인간의 능력은 갈수록 퇴화되고 무가치하게 되어간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다른 책에 비해 두꺼운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생각하기를 쉼 없이 하는 우리에게 왜 우리는 생각을 멈추지 못할까,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가 인공지능을 만났을 때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류와 '나'는 예측 가능한 미래에 앞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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