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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by 하 루 살 이 201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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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 강(江) 줄기에 서고 싶다. 강가에 서면 짙은 공기가 코끝을 강가로 당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인생을 닮았다고 했을까.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공기는 강의 흐름을 더욱 그렇게 느끼게 해준다. 멀리서 새벽을 깨우는 도시의 움직임이 들려오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팔을 스치고 있을 때 희미한 소름이 돋아난다. 바람의 길이 털을 스치면서 차갑다는 느낌을 준다. 강가에서 멀리 두 연인이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지나간다. 다마 강에서 자살한 데카당스 문학을 이끌었던 다자이 오사무와 그의 연인을 상상해보고 싶다. '인간실격.'  




‘인간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의 주인공의 주특기를 ‘실소’에 뒀다. 남을 실소케 할 줄 알았던 주인공은 ‘요조’였다. 그만큼 인기가 많았고,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내면에 일었던 고독은 상대방에게 보여줄 기회를 항상 잃었다. 남을 웃기면 웃길수록,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해줄수록 그는 혼자된 방에서 점점 우울해갔다. 겉으로 환하게 웃었고 속으로 심하게 울었다. 속과 다른 감정으로만 타인을 상대해야 했던 주인공은 현실과 내면의 괴리를 견뎌내기 힘들어 했다. 



겉으로 드러난, 형식과 정형화된 친절로 한동안 우울해야 했던 나 자신이 이 소설에 끌린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만 외쳤다면 크게 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일하면서 ‘죄송합니다, 손님’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를 웃으며 말하는 이들. 하인을 보는 듯한 눈빛을 직접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손님이 잘못한 일임에도, 내가 처리할 수 없는 일임에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사비를 털어 처리해주는 이들.  



교육생 명목으로 6개월을 보내고 끝난 마트 일로 누군가는 ‘단념’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 어떻게든 사회는 가진 자를 위해 돌아갈 것이다. 몸부림치고 애써도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사회는 ‘남에게 먼저 잘해줘야 한다’보다, ‘남보다 먼저 잘 돼야 한다’는 사회다. 나는 사회가 변한다는 것에 단념을 하게 됐다. 이런 사회에 융화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보며 거기에 융화되고자 했던 ‘요조’가 결국 좌절한 것처럼 나도 비슷한 실격자의 마음을 품을까 두려웠다. 인간실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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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백화점의 한 여직원의 자살을 들었다. 감시당하며 일하고, 매출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손님에게도 혼났고 미소 짓고 웃었다. 머리를 조아렸고 집에 가서 고개를 떨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일을 잠시 쉬고 싶어진다. 일본 도쿄를 가고 싶다. 위선이 가득한 사회에서 패배의 기록을 쓴 다자이 오사무가 죽은 자리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다마 강에 서고 싶다. 강은 인생처럼 말없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워 보이고 슬퍼보이는 강. 지나간 것들을 되찾을 길이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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