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말하다] ⑭ 창세기의 "다 이루니라"와 안식일
안식일에 관하여는 앞선 글 '[성경으로 말하다]⑤ 안식일에 관하여'를 통하여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서 나는 "안식일은 행동의 제약을 위한 날이 아니라 생명의 평안을 위한 날"이라는 해석을 하였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은 지키기 매우 까다로운 행동의 제약의 날이다. 그래서 음식도 미리 사서 놔둬야하며, 화장실에서 볼 일 본 후 휴지조차 자를 수 없고, 걷을 수 있는 길이도 제약된 무엇하나 하기 힘든 날이다.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갈 때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는 것을 비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말씀에 나타난 감정은 '분기가 가득하여' 였으며 그 결과 나타난 행동은 '죽이기를 의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12:8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주인이라는 것은 그것의 소유주라는 의미다. 남이 가질 수 없는 것. 바로 내 것이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어떻게 이 말씀을 우린 이해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우리는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창세기에서 말이다.
창세기 1장은 6일 창조의 설명이 담겨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신다.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끝난 직후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host of them, were finished. And on the seventh day God ended His work which He had don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done. Then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sanctified it, because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had created and made." Genesis 2:1~3
여기 보면 안식일의 최초 버전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셨다는 말씀이다. 그 이후 출애굽기에 가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셨기 때문에 너희도 쉬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후 유대인의 안식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안식의 개념은 구약시대까지 행동의 무조건 적인 '쉼'이라는 개념으로 유대인들에 다가왔다. 물론 구약 한 부분에서는 안식일을 '즐거움'과 대비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안식일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율법이었으며 이를 어길 시 돌로 쳐죽이는 무서운 형벌이 내려질 정도로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 안식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그 안식의 개념은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이해되었을 뿐 성경에서는 분명 그 내면의 진실한 뜻을 담고 있었을 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밝히 드러난 것이라고 표현해야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도 바로 이런 점을 드러낸다. 사람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 2:27
다시 말해 안식일이 어찌나 괴로운 날인지,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느라 무진 '고생'을 하는 날처럼 되어버려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과 마찬자기로 유대인들은 지켜왔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전혀 반대였다. 안식일이야말로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바로 평안과 진저한 안식을 사람이 느껴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들어보자.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한 4:15
"The woman said to Him, "Sir, give me this water, that I may not thirst, nor come here to draw."
예수께서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에 대해 말씀하시자 여인은 본인이 우물에 물을 뜨러 와 놓고도 예수께 그 물을 달라고 간청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매일 바뀌지 않는 자신의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다시 말해 그 일을 마치고 안식할 수 있도록 요청했던 것이다. 안식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말씀 그 자체기 때문에 여인도 창조물로서 본능적으로 바로 이 하던 일의 마침으로 생기는 쉼을 바랐던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어떠한가.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히브리서 4:3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4:10
죄악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 없던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방법은 바로 2천년 전에 오셔서 한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발표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예수의 피로써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요한일서에는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1서 3:4)라는 말씀이 있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한1서 3:8)라는 말씀이 나온다. 자시 말해 우리가 이 죄에서 해방되지 못한다는 것은 마귀에게서 해방되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우릴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한1서 3:5
"And you know that He was manifested to take away our sins, and in Him there is no sin." John1 3:5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를 없애시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탄생의 분명한 목적을 이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랬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씀 또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인 것이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 19:30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우리가 창세기 2장 첫 구절에서 본 말씀이지 않은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host of them, were finished."
하나님께서 다 이루니라고 말씀하신 후 '안식'하셨다. 예수께선 '다 이루었다'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안식이었던 것이다.
(다음 내용에서 이어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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