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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으로 말하다]⑮ 가룟유다의 배신에 대하여

by 하 루 살 이 202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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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에서 한 배신자를 만난다.

그는 예수를 따라다닌 제자들 중 하나였다. 바로 가룟 유다이다. 그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제자와 비교해 그래도 예수와 연관된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다. 이번 내용에서는 가룟 유다를 먼저 쓰고 다음에 베드로를 쓰고자 한다. 베드로도 배신을 한 인물로서 생각해 볼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을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 번은 가룟 유다다.

 

그와 관련한 많은 내용은 성경에 나오지 않으나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는 예수의 제자 중에서 한 역할이 있는데 '돈 궤를 맡았던 것(요 13:29)'이다. 문제는 그가 돈 궤를 맡았기 때문인지 모르나 성경에 나오는 그의 행동을 통해 보면 그가 계산에 상당히 빠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해 쓸 물건을 사는 역할도 했다(요 13:29 -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마리아의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장면에서 그가 말한 대목이 나온다. 12장 4절이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But one of His disciples, Judas Iscariot, Simon's son, who would betray Him, said "Why was this fragrant oil not sold for three hundred denarii and given to the poor?"

 

 

마가복음 14장에는 가룟유다가 이 여자를 책망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나는 인간의 심리상 과연 그가 그 여자만 책망하는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선생을 인정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여자를 향해 노골적인 비난을 가하지만 그걸 들리도록 말한다는 것은 자기 선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시 말해 자기 선생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시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저런 거만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가룟 유다의 태도는 이 장면 하나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이 향유 때문에 가룟유다가 여자를 향해 책망할 때 예수께서 한 마디 하신다. 마가복음 14장 6절부터 9절을 보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She has done what she could. She has come beforehand to anoint My body for burial.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뒤 가룟유다의 행동이 바로 나온다. 마가복음 14장 10절이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태복음 26장 15절을 보면 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한 말이 돈을 요구한 것이다. 여자의 향유를 붓는 일이 끝나고 예수의 말씀 '저를 기념하리라'라는 말씀이 끝난 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것을 '협상'한 것이다. 돈 궤를 맡았고, 여자를 예수가 듣는 앞에서 돈을 허비했다는 것을 들먹이며 책망했고, 그리고 자기 선생을 팔아치울 '돈 협상'을 한 것이다. 모두가 돈과 연관이 있었다.

 

문제는 그는 이 계획을 세우고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이미 마음에 모든 걸 품은 상태에서 말이다. 성경에도 그의 마음 상태에 대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악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마음을 굳혀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만 마신 게 아니었다. 저녁 먹는 중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거기에는 가룟 유다도 분명 있었다. 다만 성경에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셨다'라고 쓰여있다. 이 모든 계략을 다 알고도 예수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또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요 13:21~27

 

 

그리고 요한복음 13장 30절을 보자.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Having received the piece of bread, he then went out immediately. And it was night.

 

 

빵 조각을 받고 '곧바로 나갔다'라는 내용이 영어 성경에 나온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며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셨고 유다는 그걸 받은 후 바로 나간 것이다. 그가 밖에 나갔을 때는 밤이었다. 

 

최후의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감람산에 가셨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잡히게 된다. 가룟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께 와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하고 입을 맞춘다. 이는 하속들에게 준 신호로 이미 다 맞춰놓은 작전이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에서는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예수는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갔고 거기에서 심문을 당하셨다. 그리고 사형에 해당한 자로 판명받는다. 사람들은 그 후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으며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마26:68)"고 말한다. 그 모습을 베드로만 아니라 가룟 유다도 다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놓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장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마 27:3~10

 

사도행전 1장18절에는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라고 보충 설명이 나온다. 가룟 유다가 자기의 선생이 정죄되는 것을 보고 어떤 점에서 양심에 가책을 받았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없으나, 그의 배신 행위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그가 뒤늦게 깨닫게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예수께서는 그에 대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막 14:21

 

The son of Man indeed goes just as it is written of Him, but woe to that man by whom the son of Man is betrayed! It would have been good for that man if he had never been born.  Mark 14:21

 

 

성경을 통해 봤을 때 가룟 유다의 행동은 예수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다. 실리를 따질 줄 알았으나 그의 선생과 관련돼 나타나는 기적과 사람들의 행동들을 제대로 살필 줄 몰랐다. 그래서 여자를 책망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자기의 기준만을 확고부동하게 가졌을 뿐 예수가 전파하는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자기 안에 담아두지 못했으리라. 그저 화제의 인물을 옆에 두고 사는 자기 자신으로서만 만족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는 선생의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그 후 결국 자기 선생을 팔 계략을 세우는 데 있다. 성경에는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마귀가 넣은 것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 엄청난 무리가 예수로부터 감화를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데 그 자신만 거기에서 동떨어진 채 있다가 결국 귀신의 생각이 들어와버리는 결과라니.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짜의 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 가룟 유다의 배신을 통해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예수의 죽음은 예정된 대로 흘러갔지만 거기에서 예수를 팔 자로서 쓰여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가룟 유다가 운명의 수레바퀴에 재수없게 걸렸다기 보다 가룟 유다 본인의 책임이 원인이었다고 봐야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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