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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으로 말하다 17] 로마 백부장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by 하 루 살 이 2020.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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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So when the centurion, who stood opposite Him, saw that He cried out like this and breathed His last, he said,

"Truly this man was the Son of God!"

 

 

예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직후 나온 로마 백부장의 이 발언을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 백부장의 모습은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공관복음서 모두에서 나타난다. 내용은 차이가 조금씩 있다. 그 차이는 아래 표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먼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영어로 그 표현을 보면 한국어 성경에서 보지 못한 표현이 나온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말했다는 표현만 나온다. 이 부분이 영어에서는 'saw that He cried out like this and breathed His last(예수의 울부짖음과 그의 마지막 숨쉼을 보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백부장이 예수의 죽음을 의미 없이 바라본 것이 아니라 매우 진지하고 자세히 관찰했다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는 모습이 복음서마다 어떻게 다르게 표현됐는지 살펴보자.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크게 소리 지르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요한복음에는 그런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아래 도표를 살펴보면 차이점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마태복음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46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50절)

마가복음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누가복음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요한복음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예수의 죽음의 마지막 모습을 본 백부장은 어떠한가.

공관복음서는 모두 비슷한 표현을 하고 있다. 

 

 


마태복음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가복음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누가복음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공통적으로 백부장이 예수의 운명하시는 과정을 진지하게 바라봤다는 점에선 모두 비슷하게 설명돼 있다. 이로 미루어 살펴보건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동안 비방한 사람들의 행동과 백부장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백부장은 그런 부류에는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크게 부르짖는 모습과 마지막 숨이 떨어지는 것을 가까이에서(opposite) 본 사람으로서 '영광을 돌리고' 위와 같은 고백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의 생각이 매우 진지하고 일관된 태도를 견지한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언행이 일치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즉 그의 고백,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말은 그가 예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장면을 충격적이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백부장의 고백을 또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백이 왜 하필 백부장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왜 하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고백이 예수 죽음 직후 나온 것일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면 배신한 가룟 유다와 예수를 종교 재판장에 세워 거짓 증인들을 부르고,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린 자들은 유대인이었다. 예수를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이들도 유대인이었다. 처음부터 예수의 죽음을 모의한 자들도 하나같이 유대인이었다. 그 모의에는 이방인의 노력이 조금도 첨가되지 않았다. 성경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는 자기 민족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다. 

 

내가 방문했을 적 이스라엘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이곳은 과거 로마 군단이 자리잡은 곳으로 매우 발달된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근처에는 헤롯이 만든 거대한 수로도 있다. 엄청난 크기의 전차경기장도 발견된다. 1961년 고고학 발굴에 의해 빌라도 총독 관저도 이 가이사랴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 베드로와 사도들의 전도에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가한 이들도 먼저는 유대인이었다.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 나오는 바울의 유대인을 향한 외침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동족들의 예수에 대한 눈먼 태도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사도행전 28:28

 

Therefore let it be known to you that the salvation of God has been sent to the Gentiles, and they will hear it  Acts 28:28

 

 

결국 유대인의 배척함으로 이방인의 구원의 길이 열리는 길이 생겨났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또 갈라디아서 3장 8절에는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나같이 이방인의 구원함에 대해 '믿음'이라는 단어가 분명하게 적혀 나온다. 다시 말해 이방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백부장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니시니라. 어떤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쌔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로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니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눅 7:1~9

 

 

 

이 부분을 읽노라면 어떤 감동을 느끼지 않은가. 백부장이라 하면 7~80명의 군인을 이끄는 자이다. 특히 가버나움의 경우 거라사와 매우 가까운 곳이다. 예수께서 많은 귀신에 휩싸인 사람을 만나신 곳이 거라사 지역이다. 그 지역은 그 유명한 로마 10군단이 있는 곳이었다. 10군단은 훗날 서기 70년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73년 마사다를 정복해 유대인을 정벌한 티투스의 군단이 된다. 그만큼 갈릴리 지역은 로마 군대의 요충지였다. 당연히 이곳의 백부장이라면 그 임무가 막중하기에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 자리인 것이다. 로마 군대에서도 능력 있는 자가 가버나움을 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백부장의 모습은 또한 어떠한가. '사랑하는 종(servant, who was dear to him)이 병들어 죽게 되었기에' 예수의 치유의 기적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냈다. 마태복음에는 '하인'이라고 표현돼 있다. 군사도 아니고 부리는 '하인'이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은 자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주군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바로 그의 '믿음'을 주목하셨다. 이방인의 믿음에 대해 기이히 여기셨다. 마태복음 8장 13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Then Jesus said to the centurion, "Go your way. and as you have believed, so let it be done for you." And his servant was healed that same hour.

 

 

그 믿음은 유대인 중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것이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하인이 낫게 된다.

 

백부장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믿음' 하나만 그에게 있었다. 그뿐이다.

믿음이 기적을 만들었다. 

 

나는 갈릴리 호수 근처의 가버나움 유적지를 방문했다. 이 유적지가 예수 시대의 유적지라는 것이 고고학자들로부터 확증됐다고 한다. 

 

훗날 사도들을 통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구원의 역사는 '믿음'에 있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등을 보면 이방인의 구원을 '믿음'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 많이 찾을 수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을 생각해보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갈 2:16)을 보자. 우리의 구원은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교회 안 빠지고, 울부짖고, 심지어는 시험까지 치는 등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에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만이 있다. 그것을 백부장들이 몸소 보여줬다.  

 

백부장이 마지막 예수님의 죽으시는 장면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한 고백은 다른 것이 아니다. 힘쓰고 애써야 하는 행위가 수반된 것이 아니다. 오직 마음으로 인정하는 '믿음'에 의거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죽음 직후에 나타난 이 이방인의 고백.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복음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지 않은가. '믿음'으로 거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말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알게 된다. 행위가 아니다. 오직 믿음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Romans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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