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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으로 말하다] ⑯ 시몬 베드로의 배신과 회심

by 하 루 살 이 2020.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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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he thought about it, he wept.

 

 

베드로가 배신하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한기를 느낀다. 예수와 함께한 3년. 그 과정 속에서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 때 사람들의 '호산나' 올리는 소리를 들으며 베드로는 누구보다 더 가슴 벅차지 않았겠는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최초의 증언도 그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그는 맹세하기를 다른 제자들이 다 버려도 자신은 그럴 리 없다는 장담을 했던 사람이다.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말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다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태26:33

 

Peter answered and said to Him, "Even if all are made to stumble because of You, I will never be made stumble."  Matthew 26:33 

 

 

'다 주를 버릴찌라도'

이 표현이 참 재밌는 표현이다. 한국어로는 '버리다'라는 표현이나 영어는 'stumble', 즉 흔들리다, 발에 걸리다 라는 뜻으로 나온다. 위 영어 버전은 뉴킹제임스인데 NIV 버전으로 봐도 'fall away'로서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베드로의 말은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뜻과 함께 '나는 결코 주님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윗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같은 표현으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All of you will be made to stumble because of Me this night)'이라는 말씀에 대한 대답으로서 나온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믿음이 흔들릴 것을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당당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 그렇게 돼도 나는 예외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그가 누구보다 앞서서 예수님을 부정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요한복음에 보면 베드로 이런 자부심 넘치는 고백이 있기 직전,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눅 22:31~34

 

And the Lord said, "Simon, Simon! Indeed, Satan has asked for you, that he may sift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that your faith should not fail; and when you have returned to Me, strengthen your brethren. 

Luke 22:31~34

 

 

이미 시몬 베드로의 배반적 행동이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미리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게 돌이킨 후(when you have returned to Me)에 형제들을 강하게 해주어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걸 모르고 베드로는 자기의 신앙고백에만 바빴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입에서 '베드로의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쌔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막 14:66~72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the Lord turned and looked at Peter)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눅 22:61~63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장사 지냄까지 베드로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추운 예루살렘을 걸어다니며 베드로가 닭울음소리를 듣고 슬피 울었을 곳이 이곳이었을까하는 상상을 줄곳 하며 여행을 이어갔다. 

 

이후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가서 예수의 무덤 앞에서 돌이 굴러진 것을 발견한다. 또 흰 옷 입은 한 청년으로부터 예수께서 살으셨다는 말씀을 듣는다. 그 뒤 돌아가 이를 베드로와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한다. 이후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달려 무덤으로 갔고 먼저 도착한 요한은 무덤에 못 들어가고 그저 무덤 안을 보고 있는데, 베드로는 뒤에 도착한 뒤 먼저 무덤에 들어간다. 그 후에 요한도 베드로를 따라 무덤에 들어간다. 

 

요한복음에는 그 후에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 14:28)"라고 하신 바 있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무덤에 온 여인들에게 흰 옷 입은 청년도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막 16:7)"라고 전달했다. 그래서 그들도 그 말씀을 따라 갈릴리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런데 갈릴리에 도착한 제자들은 바로 예수를 만나지 못했고 시몬 베드로는 본업이었던 물고기를 다시 잡게 된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요 21:3~7

 

내가 갈릴리 바다 갔을 때도 그곳에서는 여전히 고기잡이에 열중하는 어부들이 있었다. 2천 년 전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고기 잡이에 열중인 베드로 등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모든 걸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
갈릴리 바다의 평온함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Therefore that disciple whom Jesus loved said to Peter, "It is the Lord!" Now when Simon Peter heard that it was the Lord, he put on his outer garment (for he had removed it), and plunged into the sea.

 

 

이 한 구절로 시몬 베드로의 심정이 다 설명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시몬 베드로는 이전 폭풍우가 치는 갈릴리 바다에 걸어오시는 예수를 보고 뛰어내려 잠시 걷다 물결을 보고 무서워 빠진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께 구해달라고 소리 질렀고 예수께서 손을 잡으신 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시고 같이 배에 오르신 일이 있다. 

 

그런 그가 훗날 예수님의 죽음이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다 버릴찌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라고 호언장담 했고 결국 그것마저 다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그는 심히 통곡했다. 남은 것 없이 다 끝나버린 그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잠잠한 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데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다시 기적이 일어났을 때 그는 겉옷을 두르고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그가 걸었다는 표현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냥 바닷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시커먼 바닷물이 그 자신을 두를 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겠는가. 배반하기까지 한 그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송구했겠는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먹고 결국 목 메달아 자살을 했다. 자기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대놓고 부정했다. 뭐가 다를 게 있겠는가. 거기서 거기지. 가장 믿음에 넘치던 자신이었으니 죄스러움은 한 수 위였을 것이 분명하다. 믿음, 자신감 다 의미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나약한 자신인가.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어떤 질책도 없으셨다. 그저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과거의 기억이, 믿음이 없어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던 자기 자신이 기억났을 것이다. 자기의 배반하는 모습이 기억 속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미리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라고 말씀하셨고 이렇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다시 바다에 빠지는 것으로 자기의 나약함과 비참함, 고통스러운 마음을 예수께 보여드리는 일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그는 그렇게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실수와 실패도, 부끄러움과 죄스러움도, 믿음도 신뢰도 다 주 앞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말이다. "믿음이 적은 자"로써 말이다. 

 

그 베드로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했다. 수천 명을 변화 시키는 위대한 설교를 한다. 욥바에서 죽은 도르가를 살리기도 한다. 고넬료를 통한 이방인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다. 완전히 변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형제들을 굳게 하는데 힘을 쏟았다. 

 

베드로는 베드로전 후서를 남긴다. 믿음이 적은 자, 심지어 예수님을 배반했던 한 사람, 그 사람의 나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써 베드로는 글을 남긴다. 나약한 우리도 베드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듯,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향한 마음도 본받을 수 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3~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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