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말하다]⑤-1 요한복음 8장과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사야 34:16
Search from the book of the Lord, and read: Not one of these shall fail; Not one shall lack her mate. For My mouth has commanded it, and His Spirit had gathered them.
Isaiah 34:16
한글 성경에선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라고 하나의 명령으로서 설명하고 있지만 영어 성경은 다르다. 분명 '자세히'와 '읽어보라'를 구분지어놨다. 뉴킹제임스에선 "너희는 여호와의 책으로부터 연구하라. 그리고 읽어라"라고 말했다. 연구의 자세를 먼저 강조했다. 그리고 읽기를 권했다. 킹제임스 버전에선 'Search'가 'Seek'라고 나와있다. 여호와의 책으로부터 찾으라는 것이다. RSV(Revised Standard Version) 또한 'Seek'라고 표현했다. 성경으로부터 찾고, 읽으라는 것이다.
한글 성경에서 자세히 읽어보라는 것을 영어 성경에서는 확실하게 그 성경으로부터 무언가를 찾고 연구하도록 해놨다. 그리고 '읽기'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물론 연구와 읽기가 분리되기는 어려우나 단순히 읽어 내려가는 것 이상의 갈구함과 간절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안식일에 대해 다시 한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안식'이라는 단어는 한국 땅에선 종교적 색체가 강하고 교단적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변질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단어의 실재적 의미는 분명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살면서 추구해야 할 가장 원초적 욕망이자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쉬 안식하지 못하는 상황에 쉽게 처하기 마련이다. 육체적 안식 외에도 정신적 안식에서 실패한 인간들의 결과물이라는 것, 타인에게나 본인에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살인과 자살과 폭력과 전쟁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과연 이 안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인생이 당면한 최대의 고민이며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성경에는 '안식'에 관한 내용이 수도 없이 많다. '안식일'은 아예 유대 민족에게 율법으로서 주어졌다. 하지만 예수는 그 율례로써 주어진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진짜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안식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2:8
예수는 안식일에도 진흙을 이겨 소경을 눈 뜨게 하신 적도 있다(요한 9:14).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는 것을 비판한 바리새인들에게 오히려 다윗의 사례를 들어 제자들의 잘못 없음을 설명하셨다(마가 2:23~28). 다른 안식일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아예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봤으며(누가 6:7) 예수는 이 생각을 알고 그들 앞에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고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다(누가 6:10) . 이를 본 유대인들은 이를 갈기 시작했다. 죽이기로 결단했다.
"저희가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누가복음 6:11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마태복음 12:14
지금까지 지켜온 자신들의 안식일의 규정과 예수가 설명하는 안식일의 규정이 충돌했을 때 그들의 선택은 '살인'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물어보고, 말해보고, 논의해보길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사람을 죽이는 일을 모의한 것이다. 그만큼 유대인에게 있어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의 결정을 지을 수 있는 기준이었으며, 이런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두철미하고 심하게는 억지로라도 그들은 안식일을 지켰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안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죽지 않기 위해 지키는 안식일은 진정한 안식을 위한 날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마치 예수 시절의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란 "오늘은 꼭 쉬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일 테니까"라고 협박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안식일의 개념은 다르다. 예수를 죽일 일을 의논하던 유대인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실재적 의미를 말하고 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58:13~14
물론 구약 어느 곳에 가서는 안식일에 마음을 괴롭게 하라는 명령이 나오기는 하나, 이사야가 말하는 바 안식일은 죄악에서 떠나는 사람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위대한 날이라고 해석된다. 다시 말해 안식일을 통해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의식으로서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의 저자도 안식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히브리서 4:3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4:10~11
이 구절을 봐도 안식을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는 것과 연결지었다. 죄와 순종의 경계선이 안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를 죄악된 것들로부터 구분 짓고 진정한 즐거움과 순종을 할 수 있는 안식의 개념으로서 유대인들은 과연 받아들였을까.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경대로 안식이라는 것은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행동을 제약하는 날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기뻐할 수 있는 날을 안식일이자 안식이라고 지칭해야 옳다. 그럼 그것이 단순히 종교적 색채로써 토요일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식적인 것은 신약에 와서 모두 완성되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인을 가리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병자를 고치셨다. 불완전함을 완전케 하셨다.
(사진설명) 매주 금요일마다 예루살렘에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고난의 행로라는 곳을 걷는 무리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형식적 예식 속에 담겨 있는 십자가의 피흘림과 예수의 고난, 안식의 의미를 성경이 말한 바 '자세히 읽어보라'는 명령을 통해 알아보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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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말하다]④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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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영혼의 안식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불완전한 인간 자체가 안식일을 맞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무엇일까. 안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without shedding of blood there is no remission
Hebrews 9:22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성경에서는 오직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이다. 세례 요한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ohn 1:29
이 예수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 그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피흘림으로써 나의 죄가 사해졌으며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방도가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을 얻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스스로 본인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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