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말하다]⑥-1 요한복음 8장에 관하여
'요한복음 8장에 관하여'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정확하게는 '요한복음 8장 1절~11절에 관하여'라고 해야한다.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먼저 예수님 앞에 나타난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행동, 말, 그 마음 상태를 생각해보자.
이 요한복음 8장의 11절까지의 말씀은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시는 예수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가운데 세우고 물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라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 8:4~5
'모세는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냐'는 이 날카로운 질문. 이미 앞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모세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들을 강하게 질책하신 바 있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한 5:45~47
한글 성경에는 모세에 대해 '너희의 바라는 자'라고 되어 있다. 뉴킹제임스에는 '너희가 신뢰하는 모세 Moses, in whom you trust' 라고 나온다. 그 모세가 예수 자신을 위해 썼으며 그 글도 믿지 않으면서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고 그는 질책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 하는 말이 '모세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이냐'고 따진다는 것이다. 이 자체로 그들 속이 예수로 문제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구절 8장 5절에서도 그들의 의도가 잘 보인다.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여자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선생이라는 자들의 태도를 생각해보자.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하는 말이 다름이 아니라 '누군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들 법대로 돌로 쳐죽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누군가를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간음한 여인의 죄보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경을 가지고 누군가를 고소할 도구로써 사용한다는 그 목적성이 어떻게 봐도 더 저질스러운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여자는 간음 중에 잡혀왔으니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그 여자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수치심 가운데서 이 여자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를 고소할 조건으로서 사용될 도구에 불과했다. 이런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처절했을지 잠시 생각해도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과연 마음 속에 누가 더 악날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살인하고자 하는 마음', '살인을 모의하는 그들' 관하여 우리는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 사건 아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하속들을 보내 예수를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하속들이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하속들에겐 최초의 불복종이자 강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8장 앞에 나타난 사건이다.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항 잡아 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요한 7:45~8:1
바리새인들 앞에 선 하속들은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The officers answered, "No man ever spoke like this Man!"
그 세상에도 거짓 스승이 존재했다. 그 선생이라는 사람은 '살인'의 마음을 품고 밑에 사람들을 움직이는 악한자들이다. 속은 살인의 칼을 갈고 걷으로 우아한 옷을 입고 다니며 백성을 가르치는 권세자들이 이들이었다. 그들 앞에서 백성들과 하속들은 확실한 길을 찾지 못하고 혼미하며 비틀거릴 뿐이었지 않을까. 그들은 어떤 것도 '이것이다' 할 수 있는 확실함을 찾지 못하고 매번 방황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처음으로 항변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바로 확실함의 대상을 발견했다는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No man ever spoke like this Man!"
이런 하속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한 7:47~49
이 말에 니고데모가 입을 연다. 어느날 밤 예수께 찾아와 '거듭남'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던 니고네모였다. 이 니고데모는 예수를 직접 찾아 그의 생각을 물었고 그의 생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언가 확실함을 찾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그는 보였고 그 노력은 무엇보다 상대방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그것을 한 니고데모였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Does our law judge a man before it hears him and knows what he is doing?"
니고데모의 말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말은 예수의 말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로지 출신과 지역적 편견에 대한 말 뿐이었다. 색깔론을 이용한 입막음이자 '너도 그 당이냐'라고 말하는 일종의 편가르기식 경고였다. 매우 편협하고 치사한 정치공세였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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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지역을 천대시했으며 거기에서 선지자가 나올 수 없다고 마음대로 결론 내린 그들의 주장에는 어떤 하등의 근거나 논거가 없었다. 그저 자기 말이면 다 옳다는 식이었다. 대화를 거부하는 태도로써 그들은 예수를 배척했다. 그 결과 그들이 저지른 것은 '살인'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그들은 발이 빨랐다. 잠언의 1장 말씀이 이를 말한다. 그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살인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 그들이 네가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가 까닭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지베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잠언 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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