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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으로 말하다]④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by 하 루 살 이 201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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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말하다]④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3

성경의 놀라움은 한 구절 안에서도 이렇게 자세하게 나타난다. 뉴킹제임스 버전으로 이 구절을 보자.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to the Jews a stumbling block and to the Greeks foolishness, but to those who are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the God and the wisdom of God.
1 Corinthians 1:23

유대인은 구약 성경을 읽고 외우며 이를 간직하는 것 자체만으로 큰 영광이라고 느끼는 듯 하다. 사진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아래 사진은 통곡의 벽 안 쪽 아치 형 동굴 안에서.



위 구절의 앞 부분부터 상세하게 살펴보자. 

바울은 그냥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다. 초대 교회의 가장 큰 미션이라고 한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파하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도래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높은 차원의 염원이었던 것이다. 특히 말라기 시대 이후 알렉산더, 셀루코우스, 프톨레마이오스의 400여년의 제국의 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로마의 통치에 의해 유대인들은 더욱 자신들의 구약의 전통과 문화가 흔들릴 것을 염려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유대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머리에 기름 부음 받은 자로써 유대인의 '왕'을 더욱 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그분이 다윗의 위를 이을 자로써 적군을 철장으로 부수시고 다스리실 그분이 될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만국을 다스리실 왕이지, 십자가에 못 막힐 왕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시편 2:9


다니엘은 메시아의 도래를 모든 제국을 파하는 자로서 한 신상을 이야기했다.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다니엘 2:41


또 유대인이 그토록 구약성경을 읽으며 고대한 유대인의 왕은 다윗의 위를 이을 자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예레미아 33:14~17



유대인에게 그리스도라 함은 바로 '철장으로 적군을 깨뜨리고 유다가 구원을 얻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수 있도록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실 분'이라고 정의가 내려질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그는 그리스도를 이렇게 정의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Christ crucified



대인에게 이 말은 굉장히 생소하고 거리끼는 말이다. 그들에겐 '왕 중의 왕이요, 만국을 통치할' 그리스도, Christ King of kings, ruling the nations'라고 말해야 정상적인 표현이 된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Christ crucified' 라고 말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바로 너희의 왕 중의 왕이시며 만국을 통치하실 메시아였다는 유대인 입장에선 매우 부적절한 표현을 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구약적이며 매우 옳은 표현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미 52장13절 말씀을 통해 고난 받으실 메시아를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사야 52:13~15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는 분명 그리스도였지만 '십자가에 목 박힌'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해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란'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훗날에야 그가 열방을 놀래고 열왕이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심판주로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 때문이 유대인에게 예수는 '거리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유대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거리끼며 두 단어가 매치가 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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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릴 것 없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분명 이 땅에서 고난이 먼저다. 훗날 다시 오셔서 받으실 영광이 나중이다. 비천함이 먼저고 존귀함이 나중이다. 피흘려 죽으심이 먼저고 성도들과 이 땅에 다시 오심이 나중이다. 그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이며 우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고난 받으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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