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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도올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제주4·3과 여순 민중항쟁

by 하 루 살 이 20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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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는 여수·순천 지역의 민중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적 체제에 저항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1만5천 명 이상의 학살로써 국가가 대응했다고 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만행이다. 

도올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 p.302

도올 김용옥 선생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과거 그가 광주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동아시아 30년 전쟁사에 대해 강의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강의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해방 직후부터 6.25라는 비극적 전쟁 전까지의 역사. 그 역사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라디오 방송으로 해방된 직후와, 한국전쟁 전까지 5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막연하게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구, 그리고 임시정부 사람들이 들어왔을 것이고, 이승만에 의한 단독정부, 단독선거가 이뤄졌고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고,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주축으로 한 공산 세력의 창궐했다. 그리고 6.25 전쟁. 

 

이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모호하게 알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혹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치 않게 '그 역사는 잊어버려라'라는 무서운 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끔찍한 역사를 너무도 몰랐다는 것이 이 책의 강한 주장이요, 요지다.

 

그때의 역사는 바로 이것이다. 민중 학살. 정권을 잡기 위한, 친일 세력에 빌붙어 살던 놈들이 살기 위한, 그리고 정적을 살해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서운 역사의 사건들. 수만 명의 일반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토벌되었어도 외부 사람들은 그러한 소식을 알지 못했고, 오직 그 토벌이 '빨갱이 청산'이라는 더러운 거짓 정보에 씌워져 국민의 인식을 마비시켰던 역사. 

여수 순천 민중 항쟁, 제주도 4.3 민중 항쟁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북한의 전 한반도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으로 떠받들리고 있는 작금에서 그가 당시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실제로 내렸던 명령은 다음과 같다. 

 

모든 지도자 이하로 남녀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하여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며 앞으로도 어떠한 법령이 혹 발포되더라도 전 민중이 절대복종해서 이런 비행이 다시는 없도록 방위해야 될 것.

민족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빨갱이라면 어린아이까지라도 다 죽여라! 어린아이들이 사상과 이념을 가질 수 있다고 본 그 작태가 놀라울 뿐 아니라, 더 무서운 한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이 담화는 다름 아니다. 공포 정치로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술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김구나 여우형 선생보다 정치적, 사상적, 독립을 위한 자기희생적 바탕이 매우 부족한 인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배경이 확실한 민족의 지도자들은 모두 테러 당해 죽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도올 김용옥은 이승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 의원정에서 탄핵을 당해 대통령의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그는 상해 임정의 정통성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독립운동 자금을 독식하며 여전히 한성정부(한성에서 설립된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그의 탄핵 날짜는 1925년 3월 23일이었다. 박은식이 그의 후임으로 선출됨.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 탄핵, 면직된 자는 두 사람뿐이다: 이승만과 박근혜)." '우린 너무 몰랐다' p.148

 

이승만이 상해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했다는 사실조차 우린 너무 몰랐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승만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 이놈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다( 이 책 p.135)."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주 4.3으로 죽어간 수많은 제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토벌 명령에 대해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를 만들고 인민을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에 대해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간 여수 순천의 14연대. 그리고 그러한 의로운 결정에 찬성했던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끔찍한 대학살. 그 무지막지한 살인의 공포에서 세워진 초대 대통령의 권좌.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xca&logNo=220499426885&categoryNo=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출처 - 연합뉴스 / 사진 제공 : 유광언 씨. 아래 4개 사진 동일. 20세기 최고 종군사진기자이자 포토 에세이의 개척자로 꼽히는 미국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그가 남긴 1948년 여수-순천사건의 기록물들. 당시 '라이프'지의 작가였던 마이던스는 여수-순천 사건의 기록물들에 '갈라선 나라(House Divided)'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외에도 엄청난 끔찍한 역사가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계속 펼쳐졌다. 

 

우린 서북청년단이 뭐하는 집단이었는지, 미군정의 무지가 어떠했는지, 북한에선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이승만의 포악한 정치는 어떠했는지, 왜 친일파가 아직까지도 득세하고 있는지, 위대한 독립군들은 어떻게 그렇게 해방 직후 빠르게 사라져갔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아예 모르는 것보다 애매하게 아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맞다. 우린 애매하게 우리의 역사를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그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국가 체제가 움직여왔다.

 

국가에 의한 무자비한 살상의 역사를 감추기 위해 모든 것을 이념과 정치 색깔로 덮어버리고, 그리고 뭘 말해도 '빨갱이' 하나로 씌워버려서 여수·순천 민중항쟁과 제주 4·3의 국가에 의한 끔찍한 민중 토벌의 역사를 빨갱이 청산으로 숨겨버리는, 그런 가리워진 역사를 배워온 것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 책을 출판하기 전에 제주도와 여수, 순천 지역에서 관련 강의를 했고 그것이 유튜브에 올라와있다. 나도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끔찍했던 우리의 역사를 생각하고, 현재 좌우 이념으로 갈라져 극렬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뱉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도 생각하게 됐다.

 

참. 우린 너무 불행하고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찬란한 항일의 역사의 숭고한 그 정신들도 후손에게 유전되지 않고 싹이 말라버리게 된 것이다. 불행 중 최악의 불행이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유럽의 각 국에선 자신들의 고귀한 항전과 희생의 역사를 자녀들에게 전한다. 그렇게 민족적 정신을 기른다.

 

우린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출처 http://storyjeju.com/ecojeju_recommend/47093

 

우린 너무 몰랐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니 너무나 잘못 알았다! 통탄의 감정이 솟구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관련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FPvW6lxgHM 

유튜부에 연관 영상으로 '도올 말하다 여순 민중항쟁' 2편, 3편이 올라와있을 것이다. 모두 봐야 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B1LLDL-fY

이 영상도 마찬가지다. '도올 김용옥 제주 4·3을 말하다' 2편, 3편이 모두 올라왔다. 모두 봐야 전체 역사의 맥락을 정확하게 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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