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페이지가 593장에 달하는 책 사이즈에 '이 책을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예상보다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역사 속의 익숙한 소재들로 책들을 채워나갔기 때문에 부담 없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만의 독특한 시각 덕분에 역사를 새롭게 보는 재미도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기독교나 이슬람 등 신의 존재를 믿는 누구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종의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없애고 이 지구상에 퍼진 인류가 되었다고 보는데, 그것이 바로 인지혁명으로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첫 조상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 입장에선 진화론의 것을 주장하는 이 책이 보통 문제의 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의 시각이 불편했다. 다만 유발 하라리가 그러한 진화론의 까마득한 역사를 주장하면서도 책 곳곳에 그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잘 모르겠다'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것을 보면서 '역시 진화론에는 빈약한 곳이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기쁨을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지상의 만연함이 인지혁명으로 가능했다고 보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류의 '신화' 창조가 인류를 지구상의 제1의 지배자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신 뿐만 아니라 화폐도 신화를 믿을 수 있는 인간들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제국, 국가, 자본주의, 공산주의, 마지막엔 인권이라는 것도 모두 다 신화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한다.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신화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오직 이 신화들의 창조로 인해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고 국가를 만들 수 있었으며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신화로 인해 종이에 불과한 지폐는 가치를 가지게 됐고 무역을 일으켰으며 경제를 발전 시킬 수 있었다. 모든 이데올로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봤다.
그는 마지막에 가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미래의 인간 종의 멸종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꺼낸다. 역사는 진보했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은 과연 행복해졌는가. 생활을 풍요로워졌고, 인간은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행복감은 과연 커졌을까. 소외감과 외로움은 인간의 문명이 커질수록 덩달아 커지는 경향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해에 지구상의 자살자가 테러나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을 봤을 때 우리를 죽이는 것은 어떤 가공할 무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다.
그런 우리가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것도 우리의 행복과 무관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불안한 것이다. 인간은 이제 생명을 창조하려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명을 조작하려 한다.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고 싶어하고, 인간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생물의 것에 생명을 넣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새로운 혁명을 시도한다. 영화에서의 사이보그 세상이 현실이 되고 있는데 이것을 소름끼치게 생생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바로 유발 하라리다.
그의 책 '호모데우스'를 그래서 꼭 읽어봐야 하는 것도 바로 그가 바라보는 미래상이 매우 현실적이고 치밀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높은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바로 생명공학의 혁명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의 멸망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 그것이 성경 요한계시록에서는 '말하는 우상'이라고 한다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영혼은 없지만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체의 탄생은 이 성경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일 것이다.
매우 재밌게 읽은 책이다. 호모데우스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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