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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도마복음은 성경의 외경인가

by 하 루 살 이 2019.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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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Jesus said, "He who seeks should not stop seeking until he finds. 

When he finds, he will be troubled, he will marvel, and he will reign over all."


도마복음 2:1~4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1',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 2'를 읽었다. 이 책들은 신약 27권 외에 모든 책들을 외경이라고 지칭하며 성경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에겐 분명 이단적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는 자에 대한 저주의 경고가 나온다. 이것을 아는 자들에게 신약 27권 외에 다른 성경을 말하거나, 심지어 생각한다는 것마저도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보편적 태도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두려움'이란 분명 내재적 현상이다. '두려움'이 외면화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다름 아닌, 지독한 아집과 집착, 그리고 타인을 향한 배척이다. '내가 알지 못한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이다. 이런 배척의 결과가 나타나기 십상이라는 두려움의 결과적 가능성이야말로 우리가 더욱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도대체 신약 27권을 누가 정했느냐. 모세의 십계명처럼 하나님이 돌판을 만들어 거기에다 직접 손가락으로 쓰신 것 처럼(출31:18) 신약의 27권도 결졍됐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신약 27권이 결정될 당시만 해도 수많은 다른 편지들이 읽히고 보관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당시에 누군가에 의해 27서가 선택되어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누군가'와 '당시'에 대한 시대적 배경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도 있다.

27서 외에도 '수많은 다른 편지들'이 당시에 분명 기독교인들의 손에서 읽혀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에 와서 '영지주의적'이라거나 '외경'이라는 언어로 색안경을 끼고서만 볼 일이 아니다.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바울 사도가 말한 라이디게아에 대한 내용을 보면 분명 다른 책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나온다. 27서 외에 다른 책들의 존재를 쉽게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닌, 분명한 역사적 이유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골로새서 4:16


"Now when this epistle is read among you, see that it is read also in the church of the Laodiceans, and that you likewise read the epistle from Laodicea."



이 중에 우리가 자세히 생각해봐야 할 문장이 나온다.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you likewise read the epistle from Laodicea.


바울 사도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 즉 라오디게아서를 읽으라고 권했다. 골로새서 외에 라오디게아서가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이스라엘에 가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예수의 역사적 행적에 대해 고민했다. 이 사진은 지중해 해변의 가이사랴에 있는 수로 유적. 이 수로는 다름 아닌 헤롯의 작품이다. 이 근처에는 바울 사도가 로마로 가기 전에 잠시 억류돼 있었던 가이사랴 유적지가 많다.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거닐어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황홀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뿐 아니다. 누가복음 1장도 우리에게 예수의 행적, 다시 말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와 같은 글을 쓰는 저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전달한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누가1:1~2


이 누가복음 1장의 초반 내용을 영어로 보면 표현이 조금 달라진다. 


"Inasmuch as many have taken in hand to set in order a narrative of those things which have been fulfilled among us, just as those who from the beginning were eyewitnesses and ministers of the word delivered them to us, it seemed good to also, having had perfect understanding of all things from the very first, to write to you and orderly account, most excellent Theophilus,"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누가복음을 써보낸 이유는 당시 예수의 행적을 쓰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Inasmuch as) 나도 매우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된 것들을 써서 보내는 것이 옳은 줄로 알았다고 적었다. 목적성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붓을 든 많은 자들 중 하나가 도마이며 그 책이 도마복음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크게 역사적으로 어긋나는 생각은 아니리 것이다. 도올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도마복음서에 대하여 나는 고적주석의 일반적 논리를 따랐다. (중략) 이 문헌의 핵심적 층대는 4복음서의 성립보다 빠르다. 나는 AD50년경으로까지 소급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어느 로디온 파편은 그보다 후대에 성립한 것이 삽입되었을 수도 있다.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와도 무관하다. 영지주의 문헌이 보여주는 신화적 세계관으로부터 탈피되어 있다. 도마복음의 문헌적 정밀함은 그것을 외경으로 몰아붙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무색하게 만든다. 이미 도마복음은 외경으로서 소외될 수 있는 문헌이 아니며, 4복음서의 전승의 갈래를 파악하게 만드는 원자료로서 큐복음서와 함께 이미 4복음서에 내재하는 문헌으로 융합되어가고 있다. 도마복음서의 이해가 없이 4복음서를 이해하는 것이 이미 문헌비팡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올의 도마복은한글역주2 p.383


그럼 처음 의문으로 돌아가서, 대체 누가 신약 27권을 정하였단 말인가.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것을 알기 위해 이스라엘 전역만 아니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이집트의 위험지역인 도마복음이 발견된 곳까지 모조리 살펴봤다. 도마복음이 전시된 도서관 관리 책임자에게 부탁해서라도 도마복음을 찍을 수 있게 간청했고, 에세네파들이 만들어 살았던 동굴들을 직접 올라가 살피다 절벽으로 떨어질 뻔 했으며, 레바논을 가서 두로와 시돈을 살폈고, 매우 위험한 다소에 갔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고대 유적지를 거닐며 바울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다. 또 현재 700여명 남은 사마리아인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했으며 그리심산에 올라 그 정경을 살폈다. 안디옥에서 가서는 초기 기독교 발생지를 몸소 체험하며 다녔고, 꼭두 새벽에 시내산을 올라 떠오르는 강렬한 해가 선사하는 축복된 아침을 바라봤다. 그걸 통해 그는 모세를 경험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정신나간 빙의로 성경을 외곡하며 체험하는 식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적 현장에서 약 4000년 전 모세가 바라봤을 지대하고 광대한 자연의 현상을 바라보며 혹여 모세도 바라봤을 그 자연을 보고 모세를 이해해보는 경험을 그는 체험했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 매우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도올은 도마복음에 집중한다. 분명한 점은 이 도마복음이 결코 외경이라는 의도된 배척과 거부의 단어로써만 설명될 책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 신약 27권은 어떻게 선택된 것일까. 


이 것을 알기 위해선 매우 긴 역사의 스토리를 읽어야만 한다. 그래서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1에 적힌 내용을 찾아 읽는 것이 이해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우선 말해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기원전 4세기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없으면 신약 27서가 어떻게 선택됐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시 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했던 아타나시우스의 생애도 우린 들여다 봐야 한다. 그는 로마 황제들과 반대파인 동방교회권의 탄압을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그렇게 도망다니며 다니며 이집트 주변과 아시아 교회들로부터 신성화된 존경을 받았다. 목숨의 위협이 사라지고 안정된 자리가 확보된 후 아타나시우스는 서기 367년 부활절에 신약 27권을 발표한다. 현재 우리가 읽는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27권의 성경은 이렇게 완성된다. 당시 아타나시우스가 27 성경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 현재 우리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 매우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아타나시우스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27서를 결정하게 될 때 그 이유가 아직까지 우리에게 전달된다.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1'에 그 메시지가 있어 여기에 옮긴다. 


"많은 사람들이 외경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책들을 가지고 근사하게 장난질을 쳐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는 성서와 혼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간증되고 우리에게 전승되어 온 정경(the Canon)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책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생각하기에 현재의 신약 27서 외에 다른 책들은 성도들의 신앙을 혼동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27서 정경의 책들을 발표하게 됐다는 것이다. 


(감람산에서 바라본 해지는 예루살렘 전경. 예수도 감란산에서 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다는 내용이 복음서에 나온다. 나도 그 자리 어딘가에 서서 해가 지는 예루살렘 모습을 바라봤다.)



개인적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이 아타나시우스 주교의 평소 인간됨과 신앙이 위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매우 진실하고 신실했다. 당시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를 성인으로 생각했다. 그리그 그는 삼위일체로써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을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긴 세월 로마의 황제들에게 탄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하나 재밌는 사실은 16세기, 가톨릭 교회에 반기를 들며 일어난 종교혁명의 리더 마틴 루터가 요한계시록의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정설을 주창한 칼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타나시우스 주교의 '27서 정경 선택 기준'에 유명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이 의문을 던졌다는 역사도 우리에게까지 전달된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27서에 대한 생각을 고정된 틀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이해의 폭을 넓혀 유연함으로 바라볼 이유도 충분히 존재한다. 


나머지 도마복음에 대한 생각들도 포스팅으로 정리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나머지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도 마저 읽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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