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과 예루살렘

"그런데 누군가 네 눈동자가 아름답다고 말해 준 적 있니? 네가 자신감만 좀더 있으면 진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이런 노파가 아니라 네 나이였다면 너한테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넌 사랑스러운 아이야"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의 책 중 내가 가장 먼저 손에 잡았던 책이 '나의 미카엘'이다. 

대학 시절이었다. 밤까지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고 때. 도서관 공용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식히던 중 네이버의 책 소개 글을 보게 됐다. 어찌나 소개를 잘 해놨는지 나는 당장에 가방을 들춰매고 도서관을 나섰다. 그 깊은 밤 나는 신논현역의 교보문고를 갔다. '나의 미카엘'을 집어들었을 때의 그 남모를 기대감과 반가움. 작가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이 작가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나는 그에게 더욱 끌렸다. 유대인 작가를 처음 접한다는 기대와 설렘을 이 책에서 느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설렘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이 책은 나에게 선사했다. 이 책은 나에게 리얼한 예루살렘을 보여줬고, 유대인의 감성이 기존의 내 생각과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유대인 하면 '선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이상은 없었다. 마냥 선망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유대인. 최상 최대 노벨상 수상자를 가진 민족. 명예. 그것만이 나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유대인' 하면 그저 먼 민족이었던 것이다. 

아모스 오즈의 책을 읽고 그 틀이 완전히 다 변했다.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에 나오는 한 여인이 자기의 젊은 시절 만난 남자 '미카엘'과 시작하는 사랑.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그 특이한 시선. 이를 통해 유대인보다 한 인간의 인생을 향한 성찰과 인식의 틀, 그 넓이를 보다 더 배울 수 있었고, 그것이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나는 새로운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이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봤던 것이다. 차갑고, 그레이하며, 거칠고, 불안한 그 무언가가 예루살렘에 있다는 생각.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과 기분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할 수 있었다. 

역사의 지평을 열었던 예루살렘이라는 틀 이전에 이 도시는 수많은 문명의 충돌을 불러왔고, 그랬기에 서로 다른 주인들이 이 도시를 빼앗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는 도시 안의 서민들의 고통 증폭이다. 그 고통들이 도시를 채워나가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도시를 아로새겨나갔으며 해석 불가능한 문양을 도시 전체에 새겨나갔다. 

이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의 우연한 인연. 

소설 속 두 연인의 모습은 대도시 뉴욕처럼 밝지 않았다. 파리처럼 우아하지 않았다. 프라하처럼 고풍적이지도 않았다. 지극히 인간적일 뿐이었고, 두렵고 떨렸으며, 헤어짐과 사라짐에 대한 공포가 만남부터 시작한다. 그랬기에 그들의 사랑은 매우 짙었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삶의 공포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기를 부단히 노력했다. 

그들 뿐 아니라 모든 이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들이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그 도시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은 지극한 인간적이었다. 그걸 나는 몰랐다. 신성한 도시로만 상상했을 뿐이다. 

"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식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소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

아모스 오즈가 '나의 미카엘'에서 묘사하는 예루살렘은 대체로 이렇다. 결코 위대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반대로 소박하고 나약하다. 비참하고 끝이 없는 고통을 머금었다. 그것이 예루살렘이다. 

그곳에 예수가 오셨다면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굿간에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다. 그런 그 답게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도 멋진 흰말이 아니라 망아지를 탔며, 환대와 환영이 아니라 채찍고 조롱을 받았다. 왕좌에 오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렸다. 참.. 그것이 예루살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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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예루살렘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어요. 사실은 예루살렘은 언제나 사람을 슬프게 하는데 그것이 매일 매순간, 매년 매시에 종류가 다른 거죠."

'나의 미카엘'은 언제나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너무 나대는 그런 사람보다는 그저 조용히 자기의 것을 사랑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줄 아는 무게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지만 우연히라도 마주쳐 이야기를 나눠보면 의외의 밝음과 가벼움, 유머가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모스 오즈를 이제 내게는 그의 어떤 책이든 믿음을 가지고 보게 되는 작가가 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