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최신작 '역사의 역사'를 읽는 중,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대군과의 전투가 적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유시민도 헤로도토스가 쓴 그 전투에 대해 이같이 썼다. "다음은 그리스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 테르모필레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묘사한 대목이다. 아포소스강이 흐르는 협곡의 고갯길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다 전멸했던 이 전투 장면을 읽으면 헤로도토스의 '역사 토크쇼'에 빠져든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의 레오니다스 1세. 다비드(1814)
영화 '300'의 레오니다스와 그의 300의 용사들
아래 글은 유시민이 '테르모필레에서 벌어진 전투 묘사 대목'이라고 말한 바로 그 글이다.
헤로도토스가 그리스 연합군(우리는 흔히 스파르타의 300용사 만이 페르시아 대군과 싸웠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에는 그리스 연합이라고 말한다)과 함께 대군을 몰고온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와 벌인 전투 내용을 읽어보면 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 머릿속에 같이 떠올라 마치 지금 글을 읽는지 영화의 스크린을 바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글의 묘사력이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동상
아래 글이 바로 헤로도토스가 쓴 영화 전투 장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300'의 모티브가 된 실제 전투 내용이다.
크세르크세스의 군사들이 진격해오자, 자신이 죽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그리스 병사들은 고갯길이 더 넓어지는 지점까지 전진해 좁은 목 바깥에서 싸웠다.
페르시아 군은 전사자가 속출했다. 지휘관들이 채찍을 휘둘러 병사들을 앞으로 몰아댔기 때문이다. 바다에 빠져 죽은 병사도 많았지만, 전우의 발에 밟혀 죽은 자는 더 많았다. 그리스 전사들은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그리스인들은 창이 다 부러지자 칼로 페르시아 병사들을 도륙했다.
레오니다스는 이 혼전 중에 전사했다. 나는 300명 전원의 이름을 알고 있다. 다레이오스의 아우 둘을 포함하여 페르시아의 저명인사도 거기서 숱하게 죽었다. 레오니다스의 시신을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그리스인들은 시신을 거두는 데 성공했고, 네 번이나 적군을 물리쳤다.
페르시아 지원군이 대거 합류하자 그들은 고갯길의 좁은 목으로 물러나 언덕배기에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그리스인들은 아직 단검이 남았으면 단검으로, 그마저 없으면 주먹과 이빨로 싸웠다. 그곳에는 다음 글이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곳에서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4000명이 300만의 적군과 맞섰노라.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7권 223~228장.
영화 '300'의 이 장면은 헤로도토스의 책 '역사' 제7권에 수록돼 있다.
당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원정에 나섰고 이들에 맞선 스파르타의 300 용사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대군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유시민은 당시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은 이들에게 '세계 전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역과 민족, 나라와 제국을 알지 못한 이들에게 페르시아 제국과의 한판 승부는 세계전쟁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페르시아는 그들이 통치한 모든 속국의 남자와 노예, 전쟁 물자와 운송수단들이 총동원된 규모의 전쟁을 벌였다. 그만큼 이 전쟁은 분명 세계전쟁이었고 그래서 헤로도토스도 이 전쟁을 '역사'의 1권에서 5권까지 담아내야만 했던 것이리라.
테르모필레 협곡
이 전투로 인해 스파트타 왕 레오니다스는 영화에서처럼 전사했고, 그리스 전체는 불바다가 됐다. 하지만 그리스 연합군의 막강한 전투력 앞에 페르시아 대군은 놀란 개미떼처럼 우왕좌왕했고 엄청난 사상자를 속출하고 마는 피해를 보게 됐다.
레오니다스 조각상
결국 그리스 세계는 마라톤전투(영화 '300'의 배경이 된 전쟁보가 앞선 전쟁이다. 마라톤 전투는 B.C. 490년에 일어난 전투로 페르시아 육군과 해군 2만5000여명이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보병 1만명 앞에서 대참패를 당하고 물러난 페르시아의 치용적인 전쟁이었다)에 이어 이번에도 페리스아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때가 B.C 48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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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살라미스 해전이 일어났고, 이 살라미스 해전이 영화 '300' 2 제국의 부활 편이 그려낸 전쟁사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은 여느 제국이 그렇듯 여러 차례의 대규모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부적 혼란에 휩싸여 무너진다. 제국은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전쟁 영웅 알렉산드로 대왕 앞에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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