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삼류 신문사에서 문화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작가가 되려는 나의 꿈은 그 축축한 편집국 사무실에서 매일 밤 사그라졌다. 새벽녘까지 남아 매번 소설을 새로 쓰기 시작했지만, 스스로의 재능과 게으름에 실망하여 중도에 그만두곤 하였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이 깊고 긴 새벽에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Autumn Leaves'. 기타 연주곡이 흘러나온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말한 니체의 이야기 '욕망을 채울 수 없기에 우리 인생은 불행하다'는 내용이 절절하게 떠오르는 조용한 새벽이다.
최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너무 재밌게 읽고 있다. '너무'라는 표현이 식상하고 뻔하고 불분명하지만 나는 분명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고 있다.
더 명확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읽다가 웃고 또 웃고, 그 웃긴 장면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다시 읽어보고 또 읽어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재밌게 쓸 수 있을까' 부러움에 잠시 웃음을 멈추고, 책 읽기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아직 완독하지 못하고 중간까지 왔건만, 나는 이 책을 결국 먼저 소개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나는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 밖에 없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난 뒤의 실망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인데 이 책은 그런 두려움을 '약간'만 제공한다. 하지만 '약간'이라는 표현도 책을 말할 땐 대단한 찬사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책들이 마지막에 실망을 안겨 주는가.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책을 사기를 두려워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처음의 기대와 끝의 실망이 있는 책 앞에서 느끼는 절망의 기분이 있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쉽게 인간의 불완전성을 느낀다. 완벽했던 인간이 사과 한 쪽에 결국 영원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는 결국 고생을 해야만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물을 얻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서 시작한 우리 인생들은 언제나 완전하고 영원한 무언가를 찾아 해매다 고생 속에서 죽고야 말 것이었다. 인생의 불행이다. 틀림없다.
어찌됐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결코 그런 '마지막의 실망'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중간마다 어찌나 웃음을 터뜨리는 요소들이 많은지. 방송에 나오는 바보 흉내를 통해 사람의 웃음을 유발하는 그런 식의 유치한 개그와 차원이 확실히 다르다. 이 책은 고차원적인 유머와 위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불안함, 채워지지 않는 욕구 가운데서 발생하는 모든 좌절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것을 위트로서 읽는 독자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아, 인간이란 것. 별것 아니구나. 욕정과 욕망. 웃긴 거였구나. 이뤄지지 않는 꿈들에 대한 갈망을 그저 내려놔도 되는구나. 사실은 다 신기루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나와 대화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 주변과 주변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이 말은 여러 일에 투영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헛간데서 너의 책임감을 부여하지 말라는 반어법일 것이다. 내 주변부터 돌아보라는 아주 쉬운 명령일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무엇이 소중한지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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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에 쓴 저 첫 글은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저렇게 시작하는 걸 읽고 작가의 솔적함과 진정성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솔직함에 나는 솔직히 반해버렸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너무나 매력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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