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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유시민의 역작 '역사의 역사'

by 하 루 살 이 201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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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최신작 '역사의 역사'를 읽고 역시 유시민이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유시민이 글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말투와 비슷하게 쓰여진 문장들을 보며 신기해 했다. 원래 그 사람의 말투는 글귀에 묻어나오기 마련이니까 당연할 것이다. 그의 논리적 체계도 이 책에 잘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유시민의 말하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훨씬 수월하게 읽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과연 지금까지 역사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역사를 단지 사실의 나열로만 인식했던 틀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에 나는 신선함을 느꼈다. 사실의 나열은 있을 수 없고, 특히 불가능하며,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 또한 자신의 내적, 외적 경험과 이상에 의한 주관적 판단에 따라 그 사실을 기록한다는 것을 이 책은 다양한 역사가들을 통해 전달한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역사가들 가운데는 랑케처럼 오직 사실의 역사만을 써야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랑케는 확실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사실이 없으면 역사도 역사가도 존재할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새로운 견해나 견해나 창의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중략) (하지만)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수집할 수 없다. 유적과 유물은 과거의 파편을 보여줄 뿐이다. 문헌 기록 역시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일부 사실만 담고 있다. 게다가 역사가는 사료를 통해 수집한 사실을 전부 기술하지 않으며, 아는 사실을 다 기술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중심으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이것이 유시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한 사건을 사실이라고 판단한 한 주체적 인간의 주관적 나열'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랑케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을, 신채호 선생과 에드워드 H. 카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아래의 글을 보면 유시민은 분명 랑케를 카와 비교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에드워드 H. 카


레오폴트 랑케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며, 역사가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사실을 수집하고 나열함으로써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역사 서술의 목표로 서술한 랑케는 역사가를 문헌학자로 취급하는 오류를 저질렀으며 결과적으로 역사가의 임무를 외면한 셈이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취사선택 후에 살아남은 역사며 완전한 사실로서의 역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 역시 역사에 대해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강조했다. 역사의 시점이 과거일지라도 그것을 기록하는 순간은 현재의 모든 경험과 위압과 환경에 의해 재구성되는 역사이기에 현대사라고 지칭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란 우리에게 없다고 봐야 더욱 사실인 것이다. 



나는 이 책 가운데 어떤 역사가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글에서 감명을 많이 받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말한 바 "우리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우리는 우리를 비하하는 역사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말도 신채호 선생의 글을 보면서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역사와 고구려 등 고대사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정확하가 배워왔을까. 나조차도 고구려는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실패한 역사'로 배웠다. 그렇게 느끼게 배웠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역사야말로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뿌리, 외소해지려는 생각의 근원, 자기비하로 나아가려는 원흉이 바로 우리 역사를 마음대로 왜곡한 일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일본의 조선 침탈이 벌어질 때였다. 당연히 일본인들에 의해 아부를 떨고 눈치를 보는 자들로부터 우리의 역사는 왜곡됐고 비틀어졌다. 그 역사를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최근 개봉된 영화 '안시성'의 위치가 압록강 넘어 만주 벌판이 아니라 압록강 이남 평양 근처로 설정됐다. 잘못된 것이다. 신채호 선생이 김부식을 사정없이 비난한 것도 바로 사실을 지워버리고 지극히 자기 주관적, 자기 이득적 성향과 목적을 가지고 거짓을 썼기 때문이다. 


흔히들 역사를 '승리자의 역사'라고 말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역사란 한 시대의 제도와 문화와 환경에 따라 변천하는 현대사다. 중요한 점은 실패한 민족도 사실로서의 역사 쓰기를 위해 주관적으로 노력할 수 있고 그 역사를 통해 민족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반대로 실패한 민족의 역사를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옆에 있는 승리자들을 위해 아부 떨기 위해 사실로서의 역사를 거짓된 주관으로 써버리는 경우도 너무나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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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이 두 역사의 서술 앞에서 제대로 역사를 볼 수 있는 시각과 생각을 가질 책임과 의무가 있다. 과연 거짓 것을 읽고서 우리를 한없이 낮추고 비하하기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살피고 그 역사의 찬란함을 그대로 말할 줄 알며, 또한 우리의 잘못된 역사도 정확하게 볼 눈을 가지고 현상을 분석할 것인가. 이 책이 분명히 드러내아 말하는 바다. 


추운 겨울. 조용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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