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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대인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

by 하 루 살 이 2018.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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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의 상실이란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산다는 것을 말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장 아메리 '죄와 속죄의 저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휩쓸었던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유대인 학살. 누구라도 유대인이면 학살의 대상이었고, 그들은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죽어야 했고 죽여야 했다. 마치 박테리아처럼, 세균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인마냥 그렇게 누구라도 예외없이 죽어갔다. 600만명. 


이 영화도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후손과 전쟁 이후의 모든 살아남은 인류를 위해 기록물로서, 그리고 인식의 저장고로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 Operation Finale' 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구 모사드 요원들이 아르헨티나에서 한 남자를 체포한다. 그는 600만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졌고, 수많은 홀로코스트 희생 증인들 앞에서 증언을 들었으며, 그도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했고, 끝내 인류의 범죄, 유대인에 대한 범죄로써 1961년 교수형에 처했다. 


사실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취재기이자 철학서에 의해 그의 범죄 사실과 재판 과정, 판결 내용이 상세히 알려졌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관료제의 위험과 한 인간이 시스템에 의해 악을 퍼뜨리는 중대차한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경고를 아이히만을 통해 전달했다. 




이 영화는 그 아이히만이 어떻게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 의해 잡힐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전달하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동물보다 더 비참하게 여겨지고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생각하면 나는 깊은 숨을 몰아쉬곤 한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있을 수 있었을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문명국가였던 독일에서 이런 일이 자행됐다는 점이다. 


같은 인간끼리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인간에게. 

그래서 나는 어떤 주의, 가령 그것이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무엇이든 간에 한 사상에 맹목적이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점을 자주 생각한다. 가장 무서운 것이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나의 사상, 나의 생각, 나의 정의로움으로 누군가를 저주하기 시작하면, 그 인간은 인류 사상 가장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히틀러가 그러했고, 당시 독일 나치당들이 그러했으며,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당시 독일인들도 예외일 수 없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는 그렇게 한 때 본인 스스로의 행동을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나치당에 맹목적으로 충성했으며, 그것이 전쟁 중에 받은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스스로 관료주의의 폐해를 인정하며 책임감이 없다고 말한 아이히만이 어떻게 도망다니다 잡히게 됐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모사드가 아르헨티나의 국경 안에서 이 자를 체포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를 무조건 적으로 체포해서 이스라엘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것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모사드 한 요원이 그에게 다가가 일대일로 그의 희생 당한 가족의 이야기며, 사진, 본인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의 설득을 받아냈고, 결국 이스라엘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는 사인을 받아내는 과정이 상세히 전달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가 여러 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아울러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외신들도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르게 생각해야한다고 본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현 분쟁을 따로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두 개를 섞어버리면 한 때 독일인들이 저지른, 그리고 상당수 유럽인들이 묵인한 그 잔인한 인류의 죄악을 너무나 쉽게 간과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최악의 고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 나타날 결과는 역사의 반복이라는 저주다. 우리는 끊임없이 유대인의 희생을 생각해야하고 말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날 갑자기 내가 그 홀로코스트 부활의 희생자가 될지, 나의 후손이 그 역사의 되풀이되는 저주에 희생자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악이 우리도 모르게, 매우 평범하게 지상에 퍼지기 시작하는 날이 올 수 있다.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모사드가 아이히만을 잡았듯, 인류는 이 죄악의 평범성을 다시 보지 못하도록 그 저주를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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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련 포스팅 (클릭 후 이동)

실화 영화 '극비수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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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의 '죄와 소죄의 저편'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일어났던 것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일어났던 것을 단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저항한다. 나의 과거에 대해, 역사에 대해, 불가해한 것을 역사적으로 냉동시켜 버리고 그렇게 해서 화가 치밀 정도로 왜곡시키는 현재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다. 일어났던 것이 일어났던 것으로만 치부되어선 안 되는 이유는,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희생당한 자들은 결코 죽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처도 아물지 않는다"고. 


유대인에 대해 더욱 알기를 원한다면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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