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시에서 쓰이고 있는 이 '있다(ist)'라는 단어가 갖는 이러한 단순함은 공허하고 막연해서 더 이상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는 희귀한 풍요로움을 간직한 단순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니체2' p.226
이래서 철학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위의 복잡하고 아리송한 말을 가지고 99%의 사람들은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따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예술의 가치도 실용적인 생각에서 사치적인 것의 하나로 치부하고 치워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있다'라는 두 글자 동사에 대해 하이데거는 그 어느 것보다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면서도 너무나 쉽게 인식의 능력에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고 있으며 마치 물처럼 산소처럼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휘감고 있는 무엇처럼 이야기한다.
그는 그것을 존재라고 말한다.
이를 반박하기도 힘든 것은 우리는 언제나 '있다'를 쓰면서 무언가를, 모든 것을 있는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으니 존재성에 대해 무의식 중에 당연한 이치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존재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가 훨씬 자주 그리고 끊임없이 '이다'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존재'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이데거
다시 말해 '있다'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를, 아직 없는 것을, 있다가 사라진 것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주한다. 곧 관계한다.
이 '있다'라는 단어가 갖는 성질은 분명 평이함과 단숨함, 공허하고 막연함일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의 진실함을 따지게 되면 이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귀한 풍요로움과 당연하고 자연스러움, 더 나아가 지극한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다.
존재가 갖는 풍요로움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다수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이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면 존재의 진리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함과 함께 존재한다.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닌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워서 오히려 우리로부터 배척 당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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