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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헤르만 헤세 소년시절

by 하 루 살 이 2021.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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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봄을 얼마나 길고 흡족하게 즐길 수 있었던가.


헤르만 헤세의 '소년시절' 中


나는 헤르만 헤세를 좋아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순수한 감정을 가진 그를 좋아한다. 그는 사라져간 모든 것을 그리워한 사람이다. 명예욕과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오직 그 사람 자체만을 귀히 여기는 태도를 헤세는 늘 책에 담아냈다. 죽어간 모든 이들의 귀함을 그토록 아쉬워했다. 다시 없는 이들을 말이다. '소년시절'도 그것을 잘 말하고 있다.


나는 그런 고민을 한다.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과 그때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부단히 떠오르는 기억들을 적을 때가 있었다. 요즘은 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옅어지고 사라지는 기억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바닷가에서 산 적이 있다. 그곳 국민학교의 유치원 시절이 가끔 기억난다.

유치원을 담당한 여선생님은 내 기억으로는 머리는 단발에 가까웠고, 얼굴은 언제나 창백했다. 그 선생님은 한 번도 제대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선생님과의 인연은 너무나 짧았다. 그 선생님은 며칠 뒤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정신병이 심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히스테리를 부렸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냥 좀 아파 보였을 뿐이었다.



어느 날인가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이 사는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초라한 집에서 간단한 심부름을 했는데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싼 벽돌을 교실로 나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렇게 즐겁게 날랐다. 그때 선생님의 모습도 기억난다. 유일하게 밝았던 모습을. 그리고 그날의 화창함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결국 선생님이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새로온 좀 늙은 여선생님이 정신병 걸린 선생 밑에서 우리가 고생했을 거라는 추측에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고 '우리 선생님은 언제 다시 오실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 더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그 유치원에 들어간 첫 날이다. 쉬는 시간 아이들과 운동장을 뛰어놀다가 왜 그랬는지 친구들을 따라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나는 그대로 집으로 내뺐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선생님께 혼날 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은 나에게 왜 그랬냐는 질문 하나만 던지고선 더이상 말이 없는 것이었다. 그때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선생님이 기억난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런지..




헤르만 헤세의 책은 이렇게 작가의 추억에 따라 자기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소년 시절을, 어린 시절을.

어느 누가 "헤르만 헤세는 잘못된 사상을 우리에게 전달한다"고 비판하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그야말로 우리를 깨우치려고 부단 애쓰는 설교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헤세는 그저 자기 이야기를 글로 적고 싶어하는 작가일 뿐이다. 우리야 말로 이것 저것 재고 따지고 해석하기 바쁘지만 헤세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사라져간 모든 것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그게 이 책의 모든 것이다. 그를 오해하는 만큼 우리의 순수성도 사라져 없어져가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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