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순환의 항상성 constancy
수운이 말하는 상연常然이란 '늘 그러함'이다. 변화의 항상성을 말하는 것이지 불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존재 그 자체가 몸Mom(body)으로 규정되는 것이요, 몸의 오행의 기로서 하늘의 강과 땅의 질을 묘합한 것이라고 동학론 모두에서 이야기된 것이다.
내 몸이 건강할 때 이 천지의 조화가 바른 방향을 잡아 나아가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동경대전2
나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동경대전을 읽고 그의 책 '노자'의 실천이성을 본 기분이 든다. 도올 선생께서 언제나 강조하시는 바 '철학은 현세의 정치와 민중의 삶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노자의 사상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동학을 통해 드디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얻은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든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위대한 점은 그는 혼자 골방에 앉아 철학하다 마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숨을 쉬고 민중의 언어로써 말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그의 언어는 지극히 순박하고 평이하다. 결코 과시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다. 못 알아들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중을 위해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그
래서 그의 언어가 아름다운 것이다. 민중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도올 철학이 몸body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지독하게 기독교적 사유를 가진 나에게 새로운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돕는다. 기독교인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아마도 영혼육을 칼로 수박 자르듯 여긴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육은 절대 수박 자르듯 구분될 수 없다. 그러면서 구분될 수 있는 아주 오묘한 성질로써 혼합돼 있다. 즉 우리의 몸이 그토록 위대하고 귀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의 몸에 영과 혼이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이 육체의 건강함을 가능케하며, 반대로 육체의 건강함이 정신의 생동감을 유지한다는 이 놀라운 진리를 나의 실존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도올은 끊임없이 외친다. 몸을 중히 여기고, 타인을 그렇게 중히 여기며, 나아가 사회의 건강함을 추구하자. 그것은 멀리 있는 천국에서 이뤄질 것이 아니다. 현세서부터 이뤄져야 할 진리다. 그는 외친다. 그것을 도외시하면서 나를 부정하고, 타인을 저주하고, 사회를 원망할 경우 악의 씨앗은 내 몸만 아니라 나의 정신까지 더럽히고 결국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나를 돌아보게 할 척도 같은 말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실 때 '너희 안에 있다'라고 하셨다. 내 안에서 이뤄질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나의 마음뿐이겠는가. 그것은 나의 육체까지 포함한 선포다. 그 몸을 위해 우린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건강이 무엇이겠는가. 건강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행할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이것 또한 최수운의 문제였다. 상한 고기를 먹지 말 것, 냉수마찰을 피할 것, 혐오스러운 음식을 피할 것. 이런 것들이 수운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나는 이번 도올 김용옥의 동경대전을 읽으면서도 많은 것을 느낀다.
다소 기독교인들이 읽기에 충격적인 표현들이 있긴 하다. 그럼 뭐 어떠랴. 배움에 한계 짓는 순간 미련이 싹트는 것을 명심한다면 이런 책을 못 읽을 이유는 없다. 19세기 말 동학이 왜 민중으로 파고들어 갈 수 있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원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거 없다. 동경대전을 읽는 방법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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