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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랑할 때와 죽을 때

by 하 루 살 이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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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되지 않은 집을 본 지가 오래되었어.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나는 펜이 없이는 책을 읽지 못한다. 어떤 책이든 감동한 문구에 밑줄 치고, 그 위에 뭐라도 적어야 한다. 연이어 떠오르는 영감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는 약간 불안해진다. 그 영감은 곳 사라질 휘발류성이 강한 생각이기 때문에.  언제는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는데 깜빡 펜을 놓고 온 것을 알았다. 그

 

'그래 일단 읽자' 해서 읽는데 책의 문장들과 함께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그래서 책에 표시할 길 없어 그 페이지를 다시 읽기 위해 큼지막하게 접었는데, 집에서 다시 그 페이지를 펼쳤을 땐, 낮의 생각들이 다 사라진 뒤라는 것을 알았다. 어찌나 아쉽고 또 아쉽던지. 낮에 떠오른 감정이란 그때만의 것이었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분위기, 햇살과 사람들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영향을 준 결과물이었다.

펜이 없다면... 나는 펜이 있어야만 책을 읽을 수 있다.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젊은 시절.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펼치면 다양한 나의 생각들이 적혀있다. 가량 아래처럼. 

 

 

지우어가 탁 하고 침을 뱉었다. "이 불쌍한 것들의 기분은 이해할 수 있어. 우리가 그놈들의 땅을 망가뜨렸잖아." 그래버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밤에는 낮과는 달리 생각하는 법이긴 해도, 지우어는 고참인 데다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후퇴하고 있기 때문인 거야?" 그가 물었다. (중략) "공포에 질려봐야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야. 잘 나갈 땐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데 말이야. 안 그래?" 그가 말했다. 

 

 

나는 이 글에 밑줄을 치고 이렇게 적었다. "갑자기 든 생각은, 잘하면 전역이 가까워진 병장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쓸 수도 있겠다."

 

 

이 책 표지 사진.

 

 

이 책은 한 군인의 이야기다. 2차 대전에 참전한 독일 군사가 러시아에서 계속 후퇴하는 중 잠시 휴가를 나왔고, 사라진 자기 집과 부모를 발견하고, 그 마을에서 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다시 전쟁터로 나가는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 구조다. 그런데 군인의 감성이 너무나 잘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쟁의 참상이 디테일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 책의 작가가 궁금했는데 다름 아닌 작가 또한 1차 대전을 참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글의 표현이 매우 뛰어난 것을 보고, 그의 경력이 궁금했는데 다름 아닌 그는 전쟁 후 임시직 교사, 경주용 자동차 운전사, 스포츠 잡지 기자, 편집자 등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이 책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 소설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요즘 아프간에서의 탈레반 정복 소식이 많고, 거기서 전해지는 많은 뉴스들이 충격을 준다. 사람들이 그 나라를 빠져나오기 위해 항공기 연결다리에 매달리는 모습, 군용기에 가득 찬 아프간 사람들. 여인들의 공포. 아이들의 눈빛. 아 어쩌다 인류는 이 지구에서만 살 수 있음에도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것인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사치스럽기 짝이 없다고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하고 있는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 때문이다. 

 

 

천년제국을 위한 대포밥이나 거름이 될 운명.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는 이런 문장들이 많다. 현실을 직시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펼쳐 읽기만 하면 되는데, 읽어야 할 위정자들은 읽지 않고, 그저 나라의 영광, 민족의 영광, 그놈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을 죽고 죽인다.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빌어먹을 영광. 무엇이 영광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처럼 소설속 주인공도 같은 생각을 생각하고, 작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전쟁을 깊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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