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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

넷플릭스 정치풍자 다큐 '가버려라 2020 death to 2020'

by 하 루 살 이 202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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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 남을 한 해, 2020년.

한 해가 지난 지 1달이 지났다. 앞서 2019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는가? 나는 없다. 왜냐. 2020년이 그토록 강렬했기 때문이다. 호주의 산불, 흑인사망에 이은 미국 폭동과 트럼프의 마이웨이, 그리고 코로나 펜데믹. 2020년 인류는 종말의 실재성을 오래간 만에 느꼈다. 

 

그 두려움은 분명 세계인의 무분별한 소비 패턴과 타인과의 의미 없는 대면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운전자 없는 기관차 같은 경제 폭주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혼자된 개인을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곧 진짜 내 모습을 알게 했다.  그런 2020년을 넷플릭스는 유머러스하고 냉소적이며 지적으로 비아냥거리며 논평했다. 그래도 되는 한 해였고 인류였기에 괜찮았다. 

 

나는 첫 장면에서부터 '와우'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세를 고쳐 잡고 '이거 재밌겠는 걸'이라고 생각했다.

어벤저스에서 닉 퓨리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무엘 L. 잭슨이 나온 것만이 흥미를 유발한 게 아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를 칭찬하려거나 다른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큐 첫 장면에서 잭슨은 자신을 다큐 도입부에 넣지 말라고 말하면서 제작진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말했다. 제작진은 다큐의 내용이 2020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잭슨은 이렇게 말한다. 

 

 

왜 그 딴 짓을 합니까?

Why in the fuck would you wanna do that?

 

 

이야, 나는 감탄했다. 이 빈정거림은 2020년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 행동을 지적하고 있었다. 왜 이따구 짓을 하고들 난리냐.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교훈은 대체 어디다 처박아두고 있는 거냐. 저 말은 이 뜻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태도, 소수민과 사회 약자의 상황을 깊이 따지지 않고 따뜻한 집구석에 앉아 비아냥거리는 상위층 부인들, 여기저기 평론하고 다니지만 정작 진실은 말하지 않는 전문가들. 실상 따지고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왜곡해 말하는 소위 배운 자들에 대해 이 다큐는 사정없이 까버린다. 

 

 

실제로 어떤가 보라. 전문가의 말이라 하지만 언론의 입맛에 맞춰 떠받들고 짜 맞추고 공론화한다. 사람들은 속아 넘어간다. 이런 상황을 한 발자국 떨어져 보자. 코웃음이 나지 않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어떠했는가. 코웃음 조차 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을 존중했다. 한심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2020년이 온 것이다. 세상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적응도 못할 속도로. 그리고 알게 된 건 까발려진 그들이었다. 아, 무식한 인간들이었구나. 그럼 그들을 동조한 우리는?  

 

앙드레지드의 소설 제목 '위폐범들'을 생각해보자. 모두 하찮은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는 지식인 집단이란 것이 결국 가치 없는 종이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위폐였다는 사실. 이 얼마나 분노해야만 하는 일인가. 그것을 코로나가 알려준 것이다.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왜 이딴 짓들을 하고 있는가. 

 

코로나가 인류 종말을 떠올리게 하자 얼마나 개똥 같은 짓들을 인류가 해왔는지 생각이라도 해보게 됐다. 그것을 비난하는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웃음이 나면서도 잭슨의 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특정 소수만 아니라 온 인류가 합심해 멍청한 짓들을 했기 때문이다. 

 

'가버려라, 2020년 Death to 2020'. 지금 안 보면 다큐의 흥미가 떨어질 터니 지금 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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