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균은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한국인 조각가다.
그의 재능은 훌륭한 예술가인 아버지와 가정환경에서 연유되었다.
그는 점토의 경중 대소를 무론하고 직관과 예지로
다양한 삶의 형태와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를 즐긴다.
주한 이스라엘 (전) 대사 아셀 나임
'1995'라는 표지 제목의 유대균 작품집에 나온 주한 전 이스라엘 대사의 평가다. 이스라엘 대사는 유대균 조각가에 대해 그가 직관과 예지로 조각한다고 했다. 직관과 예지. 유대균도 인터뷰에서 조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 손을 훈련시켰다. 내게 있어 손은 화가의 붓과 같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철저한 도구로써, 생각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나는 내 손을 단련시켰다. 내 생각의 섬세함이 조각의 섬세함으로 그대로 나타나도록, 조각가의 감성이 작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손에 잡히는 대로 뭐든 만들었다. 흙을 만질 땐 흙의 생명력인 흙 속의 물이 마르기 전에 표현하기 위해 ‘스피드’를, 극도의 섬세함에서부터 거대함까지 표현하기 위해 ‘힘’을 길렀다.
'밴쿠버에서 작품전 여는 조각가 유대균씨'
링크 -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89006
유대균 조각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나의 20대 초반 해외에서였다. 일명 '대지大地 조각'이란 것도 그때 직접 목격했다. 당시 나는 그의 조각품보다 그의 눈빛에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시선은 상대 얼굴을 세밀히 분석하는 것 같았다. 조각가이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상대방의 표정, 주름 하나까지도 정확히 살폈던 것이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눈빛이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가 김어준과 파리에서 만나 했던 이야기들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렇게 그에 대한 '선先이해'가 내게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의 재료가 되기 싫어 떠났습니다."
세월호와 관련한 그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은 기사에서도 이미 밝혀진 것이다. 2019년 2월 대법원은 정부가 유대균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곧 재판부는 유대균이 청해진해운의 경영에 관여했다거나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된 업무 지시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대균 한 사람을 두고 봤을 때 우리는 세월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경향이 짙다. 다 무시하고 일단 그를 책임자로 보고 시작하는 사회적 태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의식 가운데 그가 대한민국 어느 곳에 나타났다고 해보자. 사진에 찍히고, 기사에 나오고,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조롱과 추잡한 이미지들이 올라올 것이다. 근거 없는 '세월호 책임자' 누명이 또 씌워질 것이다. 세월호 진상조사는 "이런 책임자가 나왔는데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는 단순한 생각들로 방해받을 것이다. 지난 6년이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유대균은 한국을 떠난 것이다. 숨 쉬고 살 수 없는 나라를 말이다. 거짓말의 재료가 되어 세월호 진상조사를 방해하는데 쓰이기 싫어서.
유대균은 2014년 당시 왜 숨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대양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오대양에 대해서는 앞의 포스팅들에서 상세히 적었다. 그 사건이 유병언 회장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그것이 어떻게 검찰 소환에 불응하게 한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과거 언론에 비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유 회장은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는 것 자체가 국민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겠으나, 오대양, 이 말 할 수 없는 비극을 통해 볼 때 그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대양 자살을 타살화한 뒤 유 회장을 주범, 곧 국민 의식에서 지워지지 않는 '살인마'로 만들어 놓고, 결국 법정에선 다른 사건으로 옥살이하게 만든 그것. 국민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 감춰진 비밀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법원이 유대균에게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어도 어느 누가 그것을 다시 고민해보겠는가.
실존 자체가 가장 위대한 성취다.
유대균 조각가의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도저히 풀 수 없는 암흑 같은 현실에서도 일단 살아만 있다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이 희망 말이다.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고통과 비극을 재료 삼아 무한한 철학을 한 니체처럼, 우리를 강하게 해 줄 무언가도 바로 이 참혹한 현실 아니겠는가. 나의 실존에 이 현실이 주는 의미 또한 무한하리라 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비난의 요소가 될 것이다. 상관없다. 나는 앞서 아해의 사진에 대해서도 썼다. 가려진 무언가에 대해 나는 끊임없이 쓸 것이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밝힐 것이다.
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11434990
news.kbs.co.kr/news/view.do?ncd=449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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