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말하다 24] 예수의 마지막 7일 - 채찍을 드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둘째 날, 처음 하신 일은 무화과나무를 향한 저주였다. 이후 성전을 정화하신다. 그런 와중에 성전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한마디 말씀을 하신다. 모든 유대 민족이 수천 년 간 행한 제사. 그 중심이 된 이 성전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체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더라.
막 11:15-19
이 하루의 일을 다른 복음서도 모두 전한다. 다만 복음서마다 가진 특이 내용이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누가복음은 짧게 2개 절로만 간단하게 처리하고 끝냄.)
마태복음 1. 정화 사건 후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와 고쳐 주심.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 wonderful things 과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해하며 예수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라고 물음. 3. 예수께서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답하심. |
요한복음 1.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 행적 서두에 이 사건을 기록. 2.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심. 3. 다른 행위자들에게 하신 거친 행동과 달리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라는 말씀을 함. 4.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기에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심. |
마태, 마가, 요한복음을 종합해 보면 예수의 행동은 매우 거칠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사람들을 내쫓고, 상을 엎은 정도가 아니라 '채찍'을 직접 만들었다는 것도 우린 알 수 있다.
사실 이 말씀에 대한 학자들과 목사들의 해석이 거의 비슷비슷하다. 일반 신도들이 읽었을 때도 해석이 어렵지 않다.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성전을 헐라라는 말씀으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허물어진 성전을 사흘 만에 일으킨다는 말씀이 나중에 거짓 증인들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월절에만 25만여 짐승이 잡혔다고 한다. 그 짐승들은 율법에 의해 제사에 적합한 흠 없는 동물이어야 했다. 때문에 이방 나라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온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판매되는 온전한 짐승을 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환전상들로부터 돈을 바꿔야 했는데, 그 안에서 폭리가 이뤄졌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돈 장난을 위한 장소로 전락한 성전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한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성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만민의 기도하는 집!
아,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성전은 틀에 박힌 제의식祭儀式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용도로써 사용되었고, 또 당연히 그래야만 했지만 예수 이후로 바뀌어야만 했다. 본질은 제사가 아니라 '기도'였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inside you are full of hypocrisy and lawlessness.
마 23:28
호세아 6장 6절에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도 예수님이 인용하셨다.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은 사람들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보셨다. 겉으로 드러난 선행이 아니라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를 중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세리를,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 하며 따로 서서 기도한 바리새인보다 더 낫게 보셨다. 과연 그 바리새인은 기도를 기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세리에 대해 "저(바리새인) 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라고 하셨다.
성전은 행위로 넘쳐나는 성전이 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위선과 불법만을 유발할 뿐이다. 오직 마음으로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만 했다. 그런 성전에 대해 예수님은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다. 자신을 빗대어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무너질 뿐이다. 실제로도 성전은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다. 그 남은 흔적이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서쪽 벽 Western Wall 혹은 통곡의 벽 Wailing Wall이다.
우리는 어떤 성전을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어떤 방도로. 어떤 자세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스도에 대해 상세히 전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오직 성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방법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으로써 또한 설명한다. 그것이 곧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3
이 안에서는 율법의 보여지는 행위보다 보이지 않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심이 된다. 귀천, 인종, 남녀와 노소의 차별이 없다. 만민이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곳이다. 이곳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믿음으로 얻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행위 것들로 가득 찬 성전의 사용을 허락지 않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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