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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예수의 마지막 7일, 무화과나무의 저주

by 하 루 살 이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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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말하다 23] 예수님의 마지막 7일 -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 둘째 날에 하신 일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였고, 두 번째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신 일명 '정화' 작업이다. 먼저 무화과나무의 저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가를 말이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일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 11:12-14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D%99%94%EA%B3%BC%EB%82%98%EB%AC%B4

 

 

'무화과의 때'라는 것은 열매 맺는 때를 의미한다.

무화과 열매는 일 년에 수차례 열매를 맺는다. 3월에 열리는 것은 첫 열매다. 겨울을 지나 열리는 것이기에 먹기에 부적당하다고 한다. 상품성도 없어 행인이 그냥 따먹도록 하게 할 정도다. 첫 열매는 또한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후 6월에 다시 열매가 열린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시기는 유월절 니산월 기간이다. 태양력으로 3-4월에 해당한다. 곧 무화과나무에 잎들이 열릴 뿐 아니라 그 첫 열매도 기대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열매를 얻지 못하셨다.

 

먼저 무화과나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을 보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뒤 벌거벗은 줄 알고 특이한 행동을 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든 것이다(창 3:7). 자기 행위의 도구로써, 죄를 가리우기 위한 방법으로써 무화과나무를 택했다. 

 

 

 

 

무화과나무가 죄를 가리우는 방도로써 사용됐다는 상징성과 함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곧 무화과는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한 예로써 예레미아가 본 '좋은 무화과'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에 대해 여호와께서 이 무화과를 이스라엘에 비유하셨다.  

 

구약 전체 말씀이 이스라엘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요구하는 글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우린 알 수 있다. 선지자들도 그 점을 꾸준히 강조했다. 하지만 열왕기서와 역대서, 선지서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이스라엘은 반대로 행동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진노를 자초했다. 하나님의 질투를 격발했다(신 32:16). 언제나 허물과 죄가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그 아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이 아들도 자기 민족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들은 마땅히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지만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라고 했다. 그 실망감. 예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며 격분하신 듯 보인다. 화가 나신 것처럼 말이다. 마치 구약의 하나님께서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을 향해 가지신 그 마음처럼. 

 

 

 

 

무화과나무는 다음 날, 즉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 셋째 날에 뿌리부터 마른 것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베드로가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는 말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믿으라. Have faith in God.

 

 

갑자기 왜 믿음을 꺼내셨겠는가.

아담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그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했지만 잘 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또한 용납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보이지 않는 희생, 즉 '피흘림'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 년을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 부단 노력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바울의 말대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결과만 나왔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모르는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믿음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의 도를 믿는 것으로써만 의롭게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바로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무화과나무에서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셨다. 당연한 것이다. 다시는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되는 길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으로만 가능한 의롭게 됨이 열렸기 때문이다. 율법으로 가능한 의는 뿌리로부터 썪어 다시는 열매 맺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가.

우린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that no one is justified by the law in the sight of God is evident, for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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