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온 정성을 다하다 보니 쓸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사용됨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다음 글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두려움'으로 여겨질 정도다.
내 직업도 글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오탈자부터 비문까지, 그리고 문장의 형태까지 처음부터 다시 살펴본다. 이런 작업 또한 만만치 않다. 마지막 출고까지 내 입장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문장을 다듬다 보면 기존 문장이 바뀌는 경우가 흔하고, 문단 전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작업들이 수반되어야만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작업을 나는 블로그에서도 똑같이 한다. 그만큼 꼭 성경이 아니더라도 어떤 내용이든지 쓴다는 것은 어떤 노동보다 힘들고 고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년 7월에 쓴 성경 연재 글을 해가 지난 2월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나는 그 시간만큼 성경을 읽었고, 또 읽었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교제했다. 로마서 1장부터 16장까지 앉은 자리에서 3시간 동안 정독했다. 바울이 말한 믿음에 관해 더 알고자 깊은 밤 로마서부터 고린도전·후서를 모두 읽고 잤다. 다음날 근무가 없었다면 나는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를 모두 읽고 잤을 것이다.
성경에 대해 쓰지 않은 지난 7개월 간 나는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어떤 책이기에 이토록 깊은가.'
물론 무한한 신뢰를 이 책에 두기 때문에 이런 칭송의 표현을 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한다. 이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하는 책이 나에게는 있다는 것을. 과연 온 새벽을 두고 한 책에 몰두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그것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에게도 그런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를.
누군가에게는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일 수도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일 수도 있고, 한 철학자의 책일 수도 있다. 또는 책이 아닌 다른 취미가 그런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성경이 나에게 깊은 영감과 충고, 교훈과 바르게함,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근본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점에서 읽을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믿음. 바울은 사람의 의롭게 됨이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 어떤 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행위는 바울에게서 거부된다. 오직 믿음만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셨을 때 하셨던 말씀도 그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막 5:34, 눅 8:48
나는 무엇보다 이 믿음에 대해 쓰고 싶다. 이 성경에는 한 맥이 존재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맥이며 중심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언약과 약속이며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 죽음은 나의 의롭게 됨과 직결되며 그 죽음에 동참하는 방법은 바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바울이 쓴 것이며, 나도 이것에 대해 쓰고 싶다. 그렇게 1만 개의 포스팅을 채워나가고 싶다. 예수를 본받는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그 심정으로 나는 쓰고 싶다.
비록 고되고 어려운 작업인 글쓰기로 믿음에 대한 증거의 방법을 택했으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내가 믿음을 증거하는데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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