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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직장생활이 힘들 때 '디오게네스'에게로

by 하 루 살 이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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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나 가리지 마시오

 

매우 유명한 이야기인데, 삶에 지친 나머지 잊어버리고 만 일화 하나를 먼저 하고 글을 이어갈까 한다. 최근 재밌게 읽고 있는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나온 한 대목이다. 읽어보면 '아, 그 이야기!'라며 분명 들었던 기억이 날 것이다. 직장 생활이 힘들 때 이 이야기가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살기를 결심했기 때문에 '개'를 의미하는 '견유犬儒 cynic'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종교든 예절이든 옷차림이든 집이든 음식이든 체면이든 인습이라면 전부 거부했다. 그가 통 속에서 살았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길버트 머리에 따르면 와전된 것이 확실하다. (중략) 그는 인도의 고행자처럼 구걸하며 살았지만 전 인류뿐만 아니라 동물도 형제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자, "햇빛만 가리지 말아 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서양철학사 p.314

 

 

나는 이 일화를 오랜만에 접하고 나서 감탄 속에 잠시 책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에게는 남들이 가진 부와 권력, 명예가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는 현실에 만족했다. 남보다 적게 가졌다고 속상할 이유도 없고, 많이 가졌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향해 '시니컬하다'라고 표현한다. 일종의 헌담에 가까운 표현이다. 냉소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디오게네스 시대의 시니컬 함은 완전히 다른 뜻이었다. 이 시대의 시닉 cynic 은 일종의 '욕망에서의 해방'을 의미했다. 행운이 뒤따라 가지게 된 모든 것에서 냉담해지라는 이야기다. 또한 가질 수 없는 명확한 것에 대해 굳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시간을 보내라는 매우 고상하고 중요한 의미를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학파의 창시자였다. 키니코스학파는 훗날 바울 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나게 되는 스토아학파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들의 생각을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키니코스학파는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했고 스토아학파는 기원후까지 거슬러 올라가 헬레니즘의 중요 사상이 된다. 왜 그랬을까. 키니코스학파는 현세의 좋은 것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것에서 냉담할 것을 가르쳤다.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고 간소한 음식에서도 배부를 줄 알며, 값비싼 옷이 아니라도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이야기했다. 러셀은 이들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그대는 후하게 베풀며 나는 서슴없이 받지만 비굴하게 아첨하지 않고 품위를 잃어 천해지지도 않고 불평불만을 떠벌리지도 않는다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디오게네스의 철학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대략적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들의 교훈은 삶의 태도를 단순히 회의적으로만 가지라는 게 아니다. 스토아학파로 넘어오는 시대는 매우 불안정한 시대였고 계층 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거지면 거지로, 제사장이면 제사장으로, 왕족이면 왕족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였다. 또한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리스와 유프라데 지역은 완전한 혼돈의 시대였다. 알렉산더가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33살에 일찍 삶을 마감하자 나라는 네 개로 쪼개졌다. 그 네 나라는 다시 셀레코우스와 프톨레마이오스로 나뉘어 긴 전쟁을 벌인다. 그 후 로마가 나타나 이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이기고 로마는 남은 땅을 모두 통치하게 된다.

 

평민들은 수세기 동안 평화라는 걸 느끼지 못했다. 재산을 모으면 전쟁에 나타난 군인들이 와서 빼앗아가기 일쑤였다. 평소엔 세리들의 폭리에 원통함은 하늘을 찔렀다. 삶을 계획할 수도 내일을 예측할 수도 없었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무의미했다. 성공이란 희망은 민중에게 해악이었다. 삶에 지쳤고 삶이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에서 회의주의는 삶을 버틸 수 있는 원천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은 그렇게 민중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잔인무도한 세상에 대한 미련을 회의적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불분명한 미래보다는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가진 것들,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 쉽게 놓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라는 교훈이다. 그런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헛된 것을 향해 달려가는 자체가 미련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세의 직장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이 디오게네스식 대처가 삶에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이 어떤 곳이던가. 언제나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책임은 자주 나에게 돌아온다. 서로 물고 뜯는 곳이 또한 직장이다. 언젠가 뒤에서 뒤통수 맞게 되는 곳 또한 직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밝고 활기차게 지내면서도 언제나 긴장해야 하는 곳이 바로 내일도 나가야 하는 직장이다.

 

이런 곳에서  우리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선 상황을 바라보기를 냉소적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직장이 아니라 가족이며 친구며, 나 자신이다. 그런데 직장에 매달리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려고 모든 행위가 자칫 에너지를 낭비하고 정신을 거기에 팔아버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럼 과연 남는 게 무엇일까. 자칫 삐끗하면 나락으로 빠지는 그곳에서 내가 받는 보상이란 그저 돈이지 않은가. 경쟁에서 이겨봐야 남는 건 돈이다. 과연 우리의 삶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하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과 최선 이전에 내 마음에서 이 목적들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 냉소적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직장에 마음을 의존하지 않게 되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거기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을 아는 사람은 덜 중요한 것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기원전 320년경 알렉산더 앞에서 "햇빛이나 가리지 마시오"라고 말한 디오게네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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