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서 6부작 다큐멘터리를 내놨는데 그 주제는 누구라도 가슴 뛰게 만드는 인물 '말콤X'에 대한 것이다.
말콤X
대학생이던 시절, 나는 낡고 작은 책자 하나를 들고 다녔다. 말콤X에 대한 책이었다. 한 쪽 발을 못 쓰는 장애를 가진 교수님은 내가 그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신기했는지 "무슨 책을 읽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말콤X의 책을 보여줬다. 그 교수님은 장애를 가졌지만 학생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다. 책 표지를 보시더니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콤X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린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과 노벨평화상이 그를 기억하도록 한다. 동시대 인물로 흑인의 자유를 위해 싸운 말콤X에 대해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부터가 그랬다. 그런데 그와 관련된 것을 알면 알수록 말콤X는 킹 목사보다 마음을 끄는 무언가를 가진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가 한 말 중 20대의 나에게 가장 뇌리에 꽂히는 이야기가 있다. 성경을 인용한 것이다.
"한 쪽 뺨을 맞고 다른 쪽 뺨을 돌려대라고 하지만 우리(흑인)에게는 돌려 댈 다른 쪽 뺨도 남아있지 않다."
그의 눈빛은 이글거렸고 그의 말은 언제나 분노를 담고 있었으며 그의 행동은 보다 강인해야 한다는 과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내면의 것에 더욱 집중했다. 그것은 눈물에 가리려는 것이었고, 슬픔을 숨기는 분노였으며, 나약함하기 때문에 강인하려고 발버둥치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의 사진만 보고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평화적 시위보다 폭력적 시위를 요구했다. 비폭력으로 가다가는 남아날 흑인이 없다고 생각했다. 평화만 일삼다간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비웃음까지 살 판이었다. 백인들은 결코 평화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흑인만 평화로우라는 말인가. 한 쪽이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어떻게 노래만 부르라는 말인가. 아니다. 맞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도 나서야 한다. 우리도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맞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는 동료의 폭력에 의한 죽음 같은 끔찍한 사건들을 두고 분노했다. 울지 않았다. 그가 속한 지도자가 참으라는 말을 저주로 여겼다. 물러나려하지 않았다. 죽더라도 죽도록 싸워보고 죽으려 했다. 질 싸움이라도 싸워나 보고 지자고 생각했다. 말이라도 하고 죽자고 생각했다. 그마저 총탄에 쓰러졌지만 그의 시신이 결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삶이 보여준 폭력에 맞선 마지막 표현이었다.
넷플릭스의 '누가 말콤X를 죽였나'는 말콤X의 생애보다 그의 죽음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의 생애를 죽음을 통해 바라본다. 기존에 알던 영웅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훨씬 현실을 잘 담아냈다. 과장된 표현으로 칠해진 삶이 아니라 현실적인 죽음으로 마지막 날들을 살펴본 것이다. 죽음으로 그가 누군지 말하고 있다.
그의 죽음에는 미스테리하고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이 존재한다. 우정과 배신이 등장한다. 협박과 복수가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죽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지냈을지 가늠할 수 있다. 그는 행복한 자가 아니었다. 행복할 수도 없었고 그것을 사치라고 그는 여겼다. 불행을 자처한 인물이었다. 흑인들의 삶이 그러했으니, 당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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