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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북' 차별을 이겨낸 천재 피아니스트

by 하 루 살 이 2019.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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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윗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용기와 도전만큼은 분명 다윗의 것이었다." 

 

늦은 밤에 노트북을 열었다. 다음 주는 크리스마스다. 누군가에겐 지독한 외로움이 기승을 부리는 날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반대로 절정의 행복이 가득한 날이 될 것이다.

 

 

그 차이를 나누는 기준은 다른 것 없다. 바로 가족이다. 그리고 친구. 나를 너무나 잘 알고, 나도 그를 너무나 잘 아는 그런 친구 말이다. 같은 추억만 아니라 서로 떨어져 지냈어도 각자 쌓아온 추억마저 너무나 비슷한 구석이 많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그런 친구.

 

가족은 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다면 방금 말한 친구는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내 옆에 서있는 이기에 가족과 다를 게 전혀 없으며 그렇기에 그런 존재는 가족만큼이나 매우 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크리스마스만큼은 좀 따뜻하고 온정 넘치는 날이라 한다면 그런 친구까지 함께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게 또 있을까 싶다. 

 

영화 '그린북'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개봉한 지 꽤 된 영화인데, 우연히 TV에서 해주는 것을 보게 됐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이렇게 노트북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 여운을 떠내려 보내기 아까웠다. 

 

'그린 북'은 미국 남부에 아직 흑인 차별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천재 피아니스트 흑인과 그의 운전수 노릇을 하게 된 이탈리아 순정파 남자가 도로 위에서 펼치는 좌충우돌 영화다. 그리고 순회공연 중 일어나는 모든 인격 모독과 차별을 보여주는 매우 진지하게 영화이기도 하다.

 

 

처음 이 영화의 스토리를 대강 들었을 때 나는 '뻔한 감동을 주려는 영화구나'라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볼 생각을 안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그린북'이 TV에 나올 때 '어디서 많이 듣던 제목인데' 정도로 나는 이 영화를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그 덕에 '뻔한 영화, 그린 북'이 아니라 '어디서 들었더라, 그 영화'가 됐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손가락은 부지런히 채널을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모르고 먹는 약이 보약이고, 기대 없이 만나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이 영화도 볼 게 없어 보기 시작한 영화였다. 그런데 그런 영화 중 간혹 명작이 있다. 보면 볼수록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영화. 그 바람에 나는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고, 마지막에 가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분명 뻔한 영화가 아니었다. 보고 나면 잠 못 이루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시대적 차별을 자신의 천재성으로 이겨내 보겠노라 덤벼든 사람이었다. 자기의 능력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사람이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었다. 많은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에 나오는 매끈한 돌을 다양하게 해석했지만, 그 작은 돌멩이는 분명 먼 옛날 양 떼를 지키며 돌팔매질에 한 솜씨 하는 그 목동의 돌멩이를 의미한다.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깔보고 무시하는 꼴사나운 거인 골리앗에 분한 그 다윗의 돌맹이었다. 다윗은 갈고닦은 돌팔매질을 유감없이 보여줄 때를 맞았을 때 얼마나 흥분되고 정률을 느꼈을까. 하지만 그는 골리앗을 반드시 떼려 눕혀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했다.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냇가에서 운명을 바꿀 매끈한 돌을 신중하게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골리앗은 그 돌에 무너졌다. 세상의 변화는 그 작은 돌에서 시작됐다.

 

 

이 흑인 피아니스트도 자신의 천재성으로 차별의 벽 앞에 선 것이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차별의 벽을 혼자서라도 허물어 놓겠노라 다짐했다.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화내지 않고 도도한 자세를 지켜내며 남미 순회공연에 나선 것이다. 남이나 깔보는 그런 인간들에게 차별받는 흑인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천재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깨닫도록 만들려고 한 것이다. 너희나 나나 다를 것 없다. 너희보다 내가 더 훌륭할 수 있다. 색깔은 의미없다. 그런 힘든 싸움에 가족까지 다 잃어버린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순정파 이태리 남자를 통해 이 흑인은 작은 것의 소중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깨닫기 시작한다. 가족과 친구의 존재를 말이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 옆에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몰라봤을 뿐이다. 이 주인공은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랬듯 너무 가까워서 놓쳐버리는 짓을 하지 않았고 크리스마스에 그 친구를 찾아갔다. 이후의 거친 싸움은 이 친구와 함께 하게 된다. 그는 분명 다윗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용기와 도전은 분명 다윗의 것이었다. 현실은 현실이고 불가능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다윗의 운명은 더욱 강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싸움은 해볼 만하게 된 것이다. 불가능도 꼭 불가능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 영화를 추천한다. 연말에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영화다. 마지막은 영화의 진짜 주인공의 피아노 연주로 대신한다. 

 

추신 : '그린북'의 의미를 말하는 건 스포일러다. 다만 외국 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있다.

 

'Green book : guide to freedom'

 

 

https://www.youtube.com/watch?v=pc61C8ji1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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