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을 넷플릭스를 통해 봤다.
뭐랄까..
명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믿고 보는 영화'였지만, 나는 어느 전쟁 영화나 쉽게 보지를 못하곤 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 본 적 없기에 그들의 감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으나 이것 하나는 공감해 볼 수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젊은 이십 대 초반의 남자들이 사회와 격리된 채,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그 시간들에 대한 감정은 무한정 공감하고도 남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스피커 속의 유명 여가수의 목소리에 새파랗게 젊은 수백명의 우리들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숨죽여 노래를 듣어야 했고, 그 모습까지도 영화 속 장면이나 내가 겪은 것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상실이었고 우리를 향해 비웃는 인생의 놀림이었다. 그리고 포기를 강요당하는 각자가 부담해야할 고통이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할 줄 모르는 어린 우리들은 그저 숨죽여 그 노래를 들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거친 군인들에게 들려주는 뜻밖의 음악은 그렇게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깃발'에는 그런 군인들의 상실감이 너무나 잘 표현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아가야만 하는 삶의 태도를 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장기는 이렇게 영화에 여과 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숨죽여 바라봤다. 위대한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서 죽어간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무엇이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단 말인가.
나도 그랬다. 이른 아침부터 밤이 맞도록 쉬지 않고 이어지는 사격 훈련에서 불현듯 '대체 우리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에 행동을 멈추곤 했다. 조교였기에 복잡하게 돌아가는 훈련병들의 훈련 모습을 멍한 자세로 쳐다보면서 우리가 불쌍하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나나 저들이나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현실자각이 일어나곤 했다. 다 별 것 없는 인생이구나.
그러면서도 그들과 하루하루를 이겨내면서 작은 기쁨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나는 발견하게 됐고, 어느 한 사람이고 의미 없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두에게는 숨겨진 보석 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있었고, 전역한 이후에도 그들과 그 시간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것을 되찾고자 부단 노력했지만 시간은 또 그렇게 무정하게도 우리를 사회의 한 일원을 만들었고, 지나간 과거의 우리와는 또 다른 우리를 형성시키고 있었다. 추억은 그렇게 조금씩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여행지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아버지의 깃발'도 그렇게 사회로 돌아온 사람들의 모습까지 잘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삶을 실패한 이들도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 모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이들이었다. 영화도 그렇게 그들을 그려냈다. 모두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이뤄낸 성공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거 의미 없는 것에서도 한바탕 웃었던 시간을 공유하던 그들을, 그 추억을 그리워할 뿐이다. 그때의 그들이 보고 싶을 뿐이다. 그때의 내가 기억날 뿐이다. 그저 무자비한 세월 앞에서 나약해져 가는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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