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만든 이안 감독의 2019년 작 '제미니 맨'을 봤다.
윌 스미스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다. 영화의 전개 속도가 높아 오랜만에 제자리 앉아 끝까지 본 것 같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와 나를 복제한 인간의 만남을 다뤘다. 조금은 흔한 소재지만 윌 스미스의 연기력으로 몰입감이 높았다.
간단하게 본 소감을 말하자면, 역시 인간에겐 그 어떤 강요도, 조언도, 훈도도 필요없다는 것.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초적인 인간의 생활양식일 뿐이다. 교육의 모든 것도 거기에서 시작한다. 그것에 바탕한 뒤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병신들만 창출된다.
생활양식이라는 것. 곧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만 알려주면 된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언제나 너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 '할 수만 있다면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라'는 것만 알려주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자녀가 자기 복제품인냥 자기 생각을 주입하고, 자기 신념을 강요하고, 자기 생각을 따르도록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가.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있을까? 그것도 '너를 사랑해서 하는 소리다'라는 허울 좋은 말로 꾸며진다. 저주는 사랑이란 단어를 통해 쉽게 자녀에게 전달된다. 한 인생은 누군가 미련함 덕분에 고통받는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미련한가. 자녀가 잘 되길 바란다? 후배가 잘 되길 원한다? 제자가 옳은 길을 가길 원한다? 그러다 타인의 인생만 망친다. 그렇다고 그들이 타인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결국 안 진다. 왜? 사랑으로 했는데 뭐. 이러고 끝난다. 얼마나 환장할 일인가.
그리고 그들의 기준이란 게 얼마나 웃긴가. 고작 해봐야 '좋은 직장', '비싼 집', '외제차' '고연봉', '노후가 보장된 삶' 그 정도 아닌가? '양심의 평안', '희생의 정신', '축복된 과거', '편안한 마음', '건강의 비결'은 뒷전이다. 이보다 더 큰 저주를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군가를 훈도할 수 없다. 각 자 알아서 터득하는 것이다. 모든 건 개인의 책임이다. 성경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각 자의 죄는 각 자가 책임지는 것. 그것이 구약의 약속이다.
그걸 모르면 자격 없는 부모이며, 불필요한 선생이며, 무책임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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