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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김영하 산문집 '여행의 이유'

by 하 루 살 이 2019.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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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제주에어 비행기 안. 앞 좌석에 써붙인 안데르센의 문구가 잊을만하면 눈에 읽혔다. 모든 죄석 뒤에 적힌 글이 전부다 같았다. 항공사가 작정하고 고객 머리에 입력하려고 한 것 같다.

여행은 당신을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

동화작가로만 알던 안데르센이 이런 글도 썼나 싶었다. 그 날따라 비가 와서 육지로 착륙하려는 비행기는 흔들렸다. 나는 과거 극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모두 소리지르고 기도하는 승객들의 모습이 너무 웃겨 그 안에서 유일하게 웃어버린 사람이었다.
그 기억이 있었는데 그만 이번엔 약간의 흔들림에도 그놈은 자만심이 흔들리는 걸 경혐했다. 나도 별 수 없구나 생각햏다. 너무 오랜만에 비행기를 탄 것이다. 여행 자체도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돌아와 읽은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그가 예능 방송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을 감탄케 하는 많은 지식의 소유자라는 걸 알게 됐어도 나는 그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십대 중반 삼성전자를 다니던 친구가 나에게 소설을 선물 했는데 그 책이 김영하가 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표지가 붉은 달로 장식된 예쁜 책이었지만 내용은  초반부터 지루했다. 다수 국가로 번역돼 나갔다지만 명화를 주제로 소설의 초반 설정을 한 것이 그토록 유치해 보였다. 특히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2000년대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했던 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소설 제목으로 한 것도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주목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유치함처럼 그의 책이 그렇게 보였다.
도무지 읽어내려가기 힘들었다. 친구의 귀한 선물임에도 나는 그 이유로 김영하와 그의 책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잡힐 수 밖에  없었다. 알쓸신잡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책은 못 쓰지만 매력은 있다' 정도로 이미지가 희석되었다.

그런데.
여행 직후에는 언제나 그렇듯 일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나는 이 묘한 감정이 늦봄의 바람처럼 사라지기 전에 느껴보고자 서점에 들렸다.

거기서 나는 유시민 작가의 여행기를 사려고 했는데, 책을 몇 자 읽자 내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유인즉 여행기인지 역사서인지 분간이 안 갔던 것이다. 그의 전작 '역사의 역사' 2편인가 싶었다. 물론 그가 간 아테네, 이스탄불, 파리 같은 도시가 역사도시이기에 역사를 다루지 않을 순 없었겠지만 내가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좀 달랐다. 여행이 주는 삶에 대한 고찰과 성찰이지 그 여행지에 대한 정보 취득은 아니었다.

그 실망감에 서점을 두리번, 어슬렁거렸고 덕분에 나는 김영하의 산문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진설명 - 제주 유기농장 청초밭영농조합에서 사람보다 자유로운 삶은 사는 닭.

아. 김영하가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읽는 내내 놀랐다. 책이 얼마나 내 생각을 사로잡고 밤늦도록 읽게 만들었나 나는 놀랐다.

우선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 마음이 들었다. 누굴 가르치는 것 같지도, 정보를 마구잡이로 전달하려는 강압이 없었다. 그는 유머가 있었다. 책 처음부터 그랬다. 중국 공항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너무나 상상되게 글을 재밌게 썼다. 그 외에도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변화시킨 것이 무엇인지도 잘 정리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는 안정적이었다. 방송에 비친 모습도 그랬었다 책도 그대로였다. 그만큼 책과 그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책에 들어 있는 정보도 유용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유시민 작가와 같은 시기에 나온 여행기지만 이 책을 먼저 산 이유는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이번 김영하의 책은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이 책을 다 읽고 그의 소설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를 알게 된 만큼 그의 소설들도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를 아는만큼 글이 읽히는 법 아니던가. 나름 사람 여행을 길게도 한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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