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도올 김용옥의 '마가복음 강해'

by 하 루 살 이 2019. 12. 17.
반응형

사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읽은지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한 후 한참 시간이 지나버리면 책에 대한 대략의 감상평은 가능해도 내용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어렵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한 강렬한 인상 덕이라고 할까, 쉽게 지워지지 않는, 도올이 마가복음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 사유로 이번 포스팅을 남기기로 했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다. 도올 선생 스스로도 이 책을 집필하는데 2년이 꼬박 걸렸다고 할 정도다. 그 양이나 깊이에 있어서 상당히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매우 진지하고 집중력 있게, 그러면서도 매우 즐겁게 읽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최근 광화문과 청와대 근처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올 선생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돼지 멱따는 소리'로 정치적 발언을 섞어가며 조심성 없이, 매우 거칠게, 신앙적 단어를 써가는 기독교의 탈을 쓴 사이비 목사들과 비교하면 도올의 신앙적 고백서이자 마가복음에 대한 주석서인 이 책은 매우 건전하고 진솔하다. 더 나아가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좋은 것은 그의 진실성과 진솔함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매우 희기한 빛을 발한다는 점이었다. 

 

이 말이 무엇인가. 남들이 가르쳐 놓은 신앙적 잣대로 성경을 대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룩함에 찌든 채 인간의 본모습을 완전히 가리워버리는 인간들을 하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특히 그런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 그 거룩한 주둥아리로 온갖 핑계의 잡소리를 내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그것은 진정한 신앙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 성경은 언제나 믿는 자에게 미칠 어려움의 처지를 고난으로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주둥아리들은 다름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해 핑계를 늘어놓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적나라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올은 성경을 대하기를 의문이 되는 부분은 가차없이 지적했고, 옳은 바에 대해서는 의심 없이 믿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 그 자체만으로 가릴 것 없이 성경을 읽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앞선 '로마서 강해', '도마복음 강해'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즐겁게 읽었다. 

 

그뿐 아니다. 

 

성경을 대하기를 그 정확성은 신학을 하는 입장에서 볼지라도 매우 놀라운 데가 있다. 다름 아니라 성경을 오직 한국어로만 아니라 영어를 함께 놓고 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신약의 원문이 희랍어로 쓰였기 때문에 희랍어 성경을 직접 대하고 분석하는 자세가 나는 너무나 맘에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그 부분을 도올 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예만 들자면, 마가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이 한 단어 

 

"곧"

 

이는 헬라말로 '유튀스'라고 한다. 그런데 도올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1장에만 11번이나 나오고,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 41회나 쓰였다. 이 '유튀스'야말로 '행위의 복음서'라는 별명을 정당케 만드는 긴장감을 나타낸다. 마가는 유튀스를 사용해 장면과 장면 사이의 긴박한 사건 전개와 긴장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그의 여행의 장면, 장면의 행위가 바로 가치의 극점을 전달하는 교훈이다. 장황한 언어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수의 끝날이 며칠 남지 않은 사람처럼 빨리빨리 곧, 곧, 장면을 전환시키며 전진한다."

도올의 마가복음 115.p

 

다시 말하자면 마가복음에서 자주 보이는 '곧'이라는 표현은 의미없이 스쳐 지나갈 표현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도 이 부분을 간과했다. 원서에서 보이는 '곧'이라는 단어, '유튀스'는 그 자체만으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나 명확한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서 그 의미를 알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도올 김용옥의 마가복음은 성경의 주석 외에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할 역사적 배경들도 설명하고 지나간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에 가신 것이 한낱 옆 동네에 가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 그 두로와 시돈의 사회적 사상적 위치와 갈릴리 지역과의 거리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이격.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과 함께 이어지는 예수의 목소리, 그리고 거기에 답하는 이 여인의 목소리.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가 7:28

 

Yes, Lord, yet even the little dogs under the table eat from the children's crumbs. 

Mark 7:28 

 

 

이 지역은 두로 지경에서 하신 예수를 만난 여인의 대답이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다. 도올은 이 점에 주목했다. 이 두로 지역은 현재의 레바논 지역으로 그 유족을 관찰해보면 이 지역은 단순히 한 이방 지역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경제적, 사상적으로 매우 수준 높은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곳에 예수께서 가셨고 이 여인을 만났는데 사람이 듣기에 매우 거북할 수 있는 예수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똑똑하게 그 말에 대해 대답했다. 그 수준이 결코 배우지 못한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배운 집안 여자의 수준 높은 되받아침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자의 딸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이를 가능케 했다는 것은 불변의 이유이겠으나 그 여인은 분명 헬라 사람이었으며, 그랬기에 그 수준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도올은 마가복음이 마태, 누가, 요한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 내용의 정갈함과 군더더기 없는 전체 맥락의 형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본다면 그럴 수도 있다. '마태복음보다 못한 마가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을 증보판인 마태복음'이라고 본다면 뭔가 두 책의 형태로서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는 마당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책은 분명 설교를 성경강의가 아닌 도덕강의로 바꾸거나, 설교시간을 정치적 발언의 장으로 바꿔버리는, 다시 말해 성경을 말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성경을 인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반신앙적 목사들에게 강한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성경을 알기를 제대로 알자, 성경을 말하기를 제대로 말하자는 것이 도올의 목소리다. 

 

칼 바르트는 1886년에 태어나 1968년까지 살다 간 이 시대의 신학자였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대적 목소리를 강하게 냈는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신의 영감에 의한 저술로서가 아니라 오직 역사적 사태에 의한 기술로서만 판단하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예수도 상황적, 역사적으로만 판단해 그 행동과 발언을 판단하고, 바울의 서신들도 지나치게 상황의 변화에 따라 분석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자유주의적 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칼 바르트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성경은 신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글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 또한 그것에 주의해야 하며, 깨달음에도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계시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하게 주장한다. 그의 역작 '로마서'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쓰여진 글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히틀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충성심은 독일총통,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다른 주님의 영향에 항거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선포하기까지 했다. 그렇듯 그는 매우 진지한 신앙적 인간이었으며,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말하기를 거부한 믿음을 가진 자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 유럽의 위대한 신학자였던 칼 바르트의 '로마서'를 읽고 있다. 믿음에 대한 칼 바르트의 고찰은 그 무게가 매우 무겁고, 신앙적 사유는 매우 심오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나는 이 신학자를 도올의 책들을 통해서 소개받았다. 왜 칼 바르트는 '믿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겠는가에 대해 신학사적 흐름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칼 바르트 외에 도올에게 상당한 신앙적 영향을 준 불트만의 자유주의적 신앙도 나는 찾아 읽어봐야 할 것이다. 

 

도올은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이스라엘만 아니라 이집트와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시리아의 광야길, 레바논과 터키를 헤매고 다녔다. 그런 노력이 자신에게 없다면 우리는 도올 김용옥의 성경의 해석을 쉽게 무시해선 안 된다. 그의 비기독교적 사고(예를 들어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분명 나와 뜻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의 다른 측면, 성경을 원서로서 파고 들어가고, 지정학적, 역사학적으로 파고들어가는 태도는 분명 성경을 믿는 한 사람에게 반성을 유발한다.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매우 추천하는 이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