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is world, and it it cetain we can carry nothing out. And having food and raiment let ue be therewith content.
나는 디모데전서 6장 6절에서 7절까지 나오는 말씀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우울증이란 부족함에서 시작한다. 원래 있던 것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박탈감은 심지어 나에 대한 책망을 유발하고 심화하여 우울한 감정으로까지 나를 위협한다.
하지만 과연 내게 부족함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 열심히 했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내가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엉망일 때, 혹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인해 재산을 잃었을 때, 나는 부족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경에 나오듯 경건이 이익이 되는 조건은 '자족하는 마음'이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환경도 조건화되지 않았다. 단 하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나는 만족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덧붙여진 것이다. 없어져도 부족을 유발하지 않는다. 원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박탈감을 유발할 이유도 없다. 사람들의 인정도, 재산의 증대도, 그저 나의 원함에서 유발되는 것들이다. 당연히 내게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면 좋은 것이고 없으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이 알고 있느니라.
Take no heed unto all words that are spoken. lest thou hear thy servent curse thee: For oftentimes also thine own heart knoweth that thou thyself likesise hast cursed others.
위 전도서 7장 21~22절 말씀을 통해서 나는 자족하는 마음을 생각한다. 남의 칭찬이 아니라 반대로 남의 흉이 내게 향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억울해할 것인가? 그래서 남이 내게 무엇이라 말하는지 알아보고 다닐 것인가. 그 자체만으로 인생은 피곤해진다. 성경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네 아랫사람이 너를 저주하고 있을 수 있음을. 그러니 애당초 마음 둘 것이 없다. 기대조차 말라.
그런데 전도서를 쓴 전도자는 한 마디 덧붙인다. 여기에서 나는 지혜를 발견한다.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이 알고 있느니라.
무슨 말이겠는가. 너도 똑같은 놈이라는 것이다. 너도 '가끔 oftentimes' 남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좀 솔직해지자. 똑같은 짓을 한 뭐 잘났다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느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갖자. 나에겐 이것이 신의 뜻이며 음성이다.
이것을 교훈 삼아 산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먼저는 정신적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나도 남을 욕하고 사는 그저 그런 인간인데, 뭐 의롭다고 남들의 욕을 신경쓰고 있겠는가. 거기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것에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는 없다.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는 법이다. 모든 것은 있다가도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기도 한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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