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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다시 읽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by 하 루 살 이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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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설국雪國' p.49

 

 

20대 초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던 나는 다소 답답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를 주는 이 소설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부럽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바보스러움을 앞세워 유치한 개그로 사람을 웃기는경우가 많은데, 일본 영화는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 조용한 주인공의 삶에서 산다는 의미를 찾는 경우가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 고요한 분위기가 이 책에도 잘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설국, 소설 속 사람들은 삶을 두려워하고, 사람들과도 멀어지고 싶어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타인과 쉽게 추억을 섞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생의 이유를 알아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또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첫 문장도 비슷한 이유에서 유명할 것이다. 쉽게 지나치고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잘 표현된 문장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추워지고 있는 2023년의 겨울. 

이 추위도 어느 순간 사라져 갈 것이다.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며 시간 보내기 딱 좋은 계절이다.

 

과거 읽었던 소설을 꺼내 읽는데 이 시간이 보통 귀할 수가 없다. 새 책에서 느껴지는 '책을 완독해야 한다'는 몰아붙임이 전혀 없다. 그저 과거 밑줄 친 문장들 몇 개만 따라 읽을 뿐이다. 그러다 다른 책이 눈에 보이면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둔다. 언제 펼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시간 속에 이 책을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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