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요한복음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 말씀을 언어로 바꿔보겠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언어는 무엇일까.
언어는 존재 간의 교류에 필요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논리적 상징체계에 불과하다. 일종의 약속인 것이다.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약속 체계라는 말이다. 그 약속은 효력의 때가 왔을 때 주변의 상황과 인간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마치 인간과 물건처럼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 언어, 그 말씀은 어떻게 보면 허상일 수도 있다. 인간이 없으면 언어도 없다. 존재가 없인 말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는 바꿔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 이전에 언어가 있었다는 것. 혹은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존재 자체가 곧 언어라고. 그리고 모든 것의 첫 시작에 말씀이 있었다고.
기독교인들에겐 불편한 이야기겠지만, 영화 '컨택트'를 보면서 요한복음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의 오만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우리의 사고는 언어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언어가 없이 사고와 인식은 불가능하다. 칸트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문제을 고찰하며 '순수이성비판'을 만들어냈다. 사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어진 인식의 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 책의 본질이다. 그 틀이 있지 않는 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고 칸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나'라는 존재도 '언어'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시도에 나선다. 언어적 감각이 그 틀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일 것이다. 인과의 능력과 언어의 관계는 무척이나 복잡하지만 그 둘은 서로 의존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곧 언어 자체가 이해 도구를 넘어서 존재의 형상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곧 언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인간 외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언어는 어떨까.
새들의 소리, 고양이의 소리, 바람의 소리, 심지어 최근 발표된 블랙홀 소리. 그것은 분명 인간의 언어와 다르다. 하지만 존재가 내놓는 소리이다. 모든 소리들에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며, 그 변화에는 수학적 논리성을 갖추고 있다. 그 소리들을 우주와 자연의 언어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언어'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듯 말이다.
심지어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그 사람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은 그 말의 뜻을 이해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오해였던 경험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언어에는 분명 오해의 소지가 많다. 오해의 정도는 이해의 정도를 훨씬 뛰어넘고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사실 각자 다른 언어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하물며 자연과 우주의 언어는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 것인가. 단 1%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존재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언어의 생명이 또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시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생명이 있었을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요한복음은 첫 문장부터 내가 모르는 신의 존재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수준에서 '있다'고, 우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 신의 존재도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가 언어적 존재인 것처럼 신 또한 그러하며, 그 언어의 본질과 시초는 신의 존재로부터 나왔고 그러하기에 만물은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법칙으로 존재하는 신'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말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언어의 존재로 있는 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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