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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한나 아렌트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by 하 루 살 이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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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렸을 때 자신의 유대인성을 자각했다. 가족이 유대인이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반 친구들의 유대인 비방에 의해서였다. 한나 아렌트의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무려 99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의 앞 부분에는 그녀의 삶에 대해 적힌 글들이 나온다. 기존에 아렌트를 안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좀 더 다각적인 시각으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의 책이 될 것이다. 요컨대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것과 시오니즘의 창시자 테어도르 헤르츨의 주장이 어째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아렌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많은 유대인들의 항의와 비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동족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아이히만의 문제를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는지. 실마리는 이 책 초반부터 곳곳에 드러난다. 

 

 

사진으로만 봐도 엄청난 두께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아렌트는 14세에 칸트에 매료되는 것으로 나온다. 칸트의 저작을 빼내어 읽는 한나 아렌트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이 책에서는 그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칸트의 철학을 배웠으며, 이후 스스로 사유해 칸트의 범례를 따랐다. 아렌트 존재의 이런 세 가지 '이미 알려진 사실(유대인성, 정신의 잠재력, 여성)'을 좀 더 세밀하게 연계시키고 분리시켜 고찰하는 것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칸트의 저작이라고 해봐야 다른 게 아닐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이 세 비판서를 읽었을 아렌트의 14세 모습. 나는 그녀가 너무나 부러웠다. 나에게는 왜 그런 과거가 존재하지 않을까. 지금 서른 중후반에 와서야 나는 칸트를 읽고자 노력한다. 얼마나 위대한 철학인지 이제 와서야 조금 알게 된다. 이제야 말이다. 정신의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그때가 아니라 많은 것들로 이미 고정되고 한계를 그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위 사진에서 한나 아렌트는 왼쪽으로 기대어 누워 친구들과 함께 미소짓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이 또 있을까.

이렇게 평화롭고 우정 넘치는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가. 유대인들은 왜 그렇게 쫓겨 다니고 숨어 다니고, 잡혀 죽어가야만 했단 말인가. 대체 유럽에서는 100년도 안 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끔찍한 민족 살인이 어떻게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행위와 정치는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은 채 우리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유일한 것들이다.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 삶은 무의미할 것이다.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이며, 그것을 경험하는 장은 행위다.
Arendt, Between Past and Future, p. 146.

 

 

 

아렌트는 반유대주의, 전체주의 이 두 단어의 연관성에 대해 깊이 연구한 철학자이다. 

아렌트의 첫 논문은 이런 현설정치에 있지 않았다. 기독교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면서 신앙인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사랑에 대한 주제가 그의 논문을 채웠다. 현실과 보다 멀리 있는 것에 대해 탐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살아있는 삶에 집중했고, 그곳에서 발생하는 비극과 맞섰으며, 현실 정치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자유라는 것을 원했다. 왜 유대인은 이 자유를 위해 그토록 싸워야만 하는가. 아렌트의 평생의 고민이었다.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는 아렌트의 많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주제가 섞여 있다. 칼럼과 비슷한 글들이라 글이 쓰인 시대적 배경 없이 읽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책의 어느 한 문장, 어느 한 단락을 통해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한나 아렌트의 책들을 적은 그 동기와 목적, 희망을 엿볼 것이라 생각한다. 아렌트의 철학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나, 어느 철학자들보다도 현실을 중시한 철학이며 아울러 비극적 역사를 통해 다시는 참혹한 파도가 인류를 덮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로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인류가 이런 철학자를 배출해 내고도 여전히 전쟁을 벌이고, 서로 위협하며 언제 터질지 모를 상황 속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정말 이해하기 힘든 현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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