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라스트 미션'은 그와 그의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극장에서 보고 가야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거장의 마지막 영화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다운받거나 스마트폰에서 봐도 그 감동은 작지 않겠지만 거장이 이 영화에서 내내 하는 말,
"젊은 것들은 언제나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지"
라는 말이 나올 때 약간의 미안함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제 갈 때가 돼서 막말이나 하는 한 늙은자의 헛말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한 영화를 진득하게 볼 줄 알고, 나올 때는 영화의 여운에 연인끼리도, 친구끼리도, 혹은 혼자라도 잠시 말을 멈추게 되는 뭔지 모를 감성이 이제는 초고속 인터넷으로 점차 사라져간다는 거장의 마지막 충고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유튜브나 네플릭스 덕에 우리는 넘치는 영상들을 소유하는 기분을 잘 느끼지만, 그 대가로 긴 영상은 조금의 인내력이라도 요할 경우면 그대로 패스해버리고 마는 '단기 집중력 저하 증후군'에 걸린 인간이 된 사실은 잘 모른다.
'라스트 미션'을 영화관에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떴으면 10분을 못 보고 넘어갔겠다.' 마블 영화처럼 박진감도 없는 영화를 진득하게 앉아 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에겐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뇌를 자극해줄 영상들이 차고 넘친다. 그것도 단기 집중력 저하 증후군 환자를 위해 5분, 10분으로 알맞게 짧게 편집한 영상들이다.
그런 영상들을 제쳐두고 왜 잔잔한 2시간짜리 영화를 보겠나. 그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영화가 될지 모를 이번 영화라 해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젊은 것들'을 바라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멍한 표정이 더욱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 생각을 하며 클린트의 표정을 보면 약간의 웃음이 나온다.
당연히 그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그래서 생각했다. 쓸데없는 인내력 테스트로 영상 앞에서 씨름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거장의 영화라면, 특히 내가 사랑하는 감독의 영화라면 당연히 영화관에 가는 것이 예의라고 봤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예의를 차려 영화가에 가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언제느 1만원 티켓 그 이상의 것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이번 영화도 예외는 없었다. 그는 그런 영화 감독이었던 것이다. 두려운 건 영화에서 그가 너무 늙어버렸다는 점이다. 정말 '라스트 미션'이 그의 진지한 인생의 고백일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두려웠다.
영화 '라스트 미션'은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도록 곳곳에 유머적 감각도 첨가했다. 하지만 이 주제 앞에선 결코 그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한 번 더 우리가 생각하길 바랐던 것 같다. 가족 그 이상의 가치는 찾기 힘들다.
영화 '그랜토리노'에서처럼 이 영화 주인공도 한국전쟁 참전 용사다. 그의 낡은 트럭 뒷 창문에 붙은 여러 나라의 스티커 중에 한국의 태극기가 유독 잘 비췬다. 그리고 어려운 미션이지만 마약 운반책이라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참전용사들이 모이는 장소가 없어질 뻔 한 것을 막고, 가족들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일이 주는 고충보다 한 인간이 일을 대하는 자세의 숭고함에 대해 느끼게 한다.
이번 영화는 참 보는 내내 심정을 복잡하게 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늦은 밤에 길거리에서 본 남자들의 무거운 어깨들이 유독 눈에 비취었던 것 같다. 그리고 줄을 서서 대기하는 택시들의 붉고 노란 라이트들이 집에 가지 못한 가장들의 곳곳에 멍든 자국들처럼 느껴져 쉽게 쳐다보기 힘들었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벌써 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 일에 치여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야 마는 현실들. 이런 결과를 만들려는 검은 의도를 가진 세상의 얼굴이 잠깐 보고야 말아 지금도 상당한 버거움을 느낀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가서 그를 변호하려는 변호사의 말을 막고 자진해서 자신의 유죄를 인정했다. 판사는 그에게 모든 혐의를 인정하냐고 다시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는 연방 교도소에 갇혔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자신의 일생의 죄업을 피해다니던 그 죄책감에서 놓이는 기분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도망가지 않고 모든걸 시인한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가족 영화지만, 결코 가족에 한저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잠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어려운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 도중 뜸금없이 그를 따라다니는 마약 2인자에게 가서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라. 너는 지금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일을 왜 붙들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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